진주만 공격은 1941년12월 7일 아침, 일 해군이 진주만에 대한 공격을 가했다. 하와이주 오아후 섬에 위치한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은 미국 태평양 함대와 이를 지키는 공군과 해병대를 대상으로 감행되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이 폭격을 계획하였고, 나구모 주이치 부사령관이 지휘를 맡았다. 진주만 공격으로 12척의 미 해군의 함선이 피해를 입거나 침몰했고, 188대의 비행기가 격추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2,335명의 군인과 68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 한편 일본군은 이 작전에서 단 64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이때 항구에 있지 않았던 미국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 3척과 유류 보관소와 병기창 등은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미국은 이와 같은 자원을 이용해서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원상복구를 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다소 고립주의적 입장을 취해 오던 미국 여론이 급변, 일치단결하여 미국의 참전을 지지하게 되었다. 공습 당일 일본은 대미영 선전포고를 발표하였으나 다음날까지 전달되지 않았고, 공격 다음날인 12월 8일 오후 미국 의회가 일본에 선전포고하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 같은 날 미국보다 9시간 앞서 영국이 일본에 선전포고하였고 12월 11일에는 삼국 동맹 조약을 근거로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하였다.
일본의 준비
일본은 만주를 점령한 몇 년 뒤인 1937년부터 중국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중일전쟁). 1941년에는 일본과 미국과의 오래된 긴장이 더 고조되었다. 미국과 영국은 일본에 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철 수출을 금지했으며, 석유 수출 금지, 미국 내 일본 재산 동결, 일본 선박의 파나마 운하 통과 거부로 중국 내에서의 군사행동을 위축시키고자 했다. 1941년11월 26일의 헐 노트를 마지막으로 외교적 노력은 절정에 다다랐고, 도조 히데키 수상은 자신의 각료들에게 이것이 최후통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석유 봉쇄는 유전이 없어서 대부분의 석유를 미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던 일본에게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세 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진주만 공격의 목표는 미국의 태평양에서의 해군력을 무력화하여 전면전이나 동시 다발적인 준비된 공격을 잠시나마 막는 것이었다.
11월 26일은 일본의 연합 함대가 진주만을 향해 출정한 날이다. 일본은 미국이 제시한 헐 통지문 내용과 상관없이 그 이전부터 전쟁을 준비해 왔었다. 그 근거로 일본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보고서를 주일 미국 대사관의 조지프 그루(Joseph Grew) 대사가 본국에 송신하였으나, 유럽 내 전쟁 문제에 몰두하던 미국 정부는 그것을 묵살하였다.[1]
일본은 진주만의 수심이 15~30m밖에 되지않아 그정도 수심에서 어뢰공격을 하기 위해 어뢰머리에 충격완화장치와 수평안정장치를 장착하여 B5N 뇌격기로 뇌격하여 최소 16발에서 최대 21발이 적함에 명중하였다.[출처 필요]
일본군의 공격 임박설에 대한 사전 정보들은 많았으나, 아무도 이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941년 1월 주일대사 조셉 그류는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계획 정보를 입수했다. 공격개시 수시간 전에 진주만 외곽에서 한 대의 잠수함이 발견되고 다른 한 대는 원인 불명인 채 침몰되었으며, 오아우 북쪽 해안 레이다 기지에서는 거대한 비행물체가 포착되었다. 많은 관리들은 일본군의 공격임박설을 알고 있었으나, 그 대상이 일본으로부터 5,000 마일 떨어진 진주만이 아닌 필리핀이라고 생각했다. 1941년 진주만의 일요일 아침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의 일과가 진행되었지만, 진주만 북쪽 200마일에서는 차가운 물살을 가르며 항진하는 항모 위에서 항공기들이 발진하고 있었다. 일본군 항공기의 라디오에는 하와이 방송국에서 흘러 나오는 달콤한 음악이 들려 오고,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어서 공격 목표물을 훤히 볼 수가 있었다고 그 당시 공격에 참가했던 일본제국 해군 소좌 미쯔오 후지다(Mitsuo Fuchida)는 회고했다.
심지어, 레이다에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당일 아침녘에 오기로 한 B-17 폭격편대로 오인하게 된다.[2] 다만 당시 일본군 함재기는 항공모함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크게 우회해 진주만의 북동쪽 방향에서 접근하였기 때문에 충분히 오인의 여지가 있었으며, 실제로 이후 군사재판에서도 당시 근무자들에 대한 태만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진주만 공격은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미국에 선전포고하기 전에 일어났지만, 이것이 그들의 본래 의도였는가에 대해서는 반론점이 있다. 실제로, 해당 작전을 수행한 야마모토 제독 역시 "전쟁 전에 미국에 먼저 선전포고를 해야하며, 공격은 평화 협상이 끝났다고 알린 지 30분 후에 개시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3] 12월 7일, 진주만 공격 전에 5,000자 가량의 두 본문으로 이루어진 암호문이 워싱턴 주재 일본대사관에 전달되었다. 이 문서의 예상 수령 시각은 진주만 공격이 시작되기 거의 직전이었다. 거기에는 미국에 대한 일본제국의 선전포고와 함께 공습 직전인 오후 1시에 이를 발표하라고 적혀져 있었지만, 노무라 대사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오후 2시에 미 국무장관 코델 헐을 찾아갔다. 이때는 하와이 기준으로 8시 50분이었고 이미 1시간 전에 진주만 공격이 보고된 뒤였다.[4][5]:pp.2ff
이렇게 된 이휴는 암호문이 5,000자가 넘어가서 해독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소모되었을 뿐더러, 보안인가가 있는 고위 관료가 방금 해독한 선전포고문을 직접 하나하나 타자했기 때문이다. 본래 타자기를 다루는 직원은 외국인이었지만, 기밀문서라는 이유로 관내의 모든 외국인들을 다 내보냈던 상태였다. 거기다가 내용의 핵심인, 일본군이 전쟁을 선포한다는 내용은 문서 가장 마지막에 써놓았기 때문에 일본 대사관 직원들도 해독이 끝날 시점에야 전쟁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전까지 많은 미국 관료들과 군 고위 장성들은 언제라도 일본 제국과 협상이 종료될 가능성이 크며,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해왔지만,[6][7] 미 정부는 먼저 선전포고를 하거나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2월 8일 저녁(미국에선 12월 7일 말)에 일본에선 '미국 및 영국에 대한 선전의 조서(米国及英国ニ對スル宣戦ノ詔書)'라는 일종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다.[8] 이것은 공격 다음날이 되서야 미국 정부에게 전달되었다.
위와 같은 요인들 때문에, 학자들은 전후 수십년 동안은 일본 제국이 우연과 실수로 인해 선전포고문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왔다.[9] 그러나 1999년 도쿄 국제기독교대학의 법학 및 국제관계학 교수인 이구치 다케오는, 일본 제국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일체 중단하고 전쟁을 일으킨다는 의사를 '어떻게 통보할 지에 대해서' 정부 내에서도 논쟁이 있었음을 지적하는 기록을 발견했다. 12월 7일 전쟁 기록에 "우리의 기만적인 외교는 성공을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라고 적혀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것이 일본 제국육군과 해군이 미국에게 제대로 된 선전포고나 협상 종료에 대한 사전 통지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고 하는 증거라고 덧붙혔다.[10][11]
그리고 일본 제국이 공격 시작 전에 선전포고문을 해석하고 전달했더라도, 이것이 미국과의 공식적인 외교 단절이나 전쟁 개시라는 본래 의도에 있어 내용이 대단히 애매모호했기 때문에 소용없었다는 시각도 있다.[12] 마지막 두 단락은 다음과 같다.[13]
Thus the earnest hope of the Japanese Government to adjust Japanese-American relations and to preserve and promote the peace of the Pacific through cooperation with the American Government has finally been lost. 이리하여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미국 관계를 조정하고 태평양의 평화를 보존하고 증진하려는 간절한 희망이 마침내 사라졌다.
...The Japanese Government regrets to have to notify hereby the American Government that in view of the attitude of the American Government it cannot but consider that it is impossible to reach an agreement through further negotiations.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의 태도로 볼 때 추가 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고려할 수 밖에 없음을 미국 정부에 통보해야 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12월 7일을 치욕의 날로 선포했고, 그로부터 3일 뒤 미국 의회는 전쟁을 선포했으며 미국인들은 일본이 본토로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해 전쟁 준비를 했고, 애국심에 군대에 자원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한인들은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인에게 반감을 사게 된 미국의 생각을 반겼으며 미 정부에 한인으로 구성된 미 육군부대를 훈련시켜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주 방위군 휴스 대령은 한인 중대를 조직하는데 협조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왔으며 이에 나이가 18세부터 64세까지인 한인들 50명이 지원했고 중국인들과 필리핀인들도 가세하여 동양인 대대가 구성되었다. 이 대대의 이름은 '맹호군'이었고 대대장은 김용성이었다. 맹호군의 정식 인가가 1942년 4월 26일에 나왔고 대대기가 수여되었다.
진주만 기습과 관련된 음모론(통킹만)
태평양 전쟁 발발과 관련하여 미국이 일본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소위 “음모론”이 떠돌고 있고, 그중 하나가 진주만 공격 당시 미 해군이 일부러 격침되어도 상관없는 구식 전함들만을 배치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애리조나호 등 정박 중이던 미군 전함들은 1941년 기준으로 취역한 지 30년 가까이 된 전함이었다. 가장 젊은 편인 애리조나호도 취역 연도가 1915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상황을 모르는 오해에 불과하다. 미군은 1922년워싱턴 군축 조약에 따라 1920년대 이후에 신형 전함을 한 척도 건조하지 못했다. 워싱턴 군축 조약 결과 미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일정한 비율의 전함만을 보유할 수 있었을뿐더러 신형함 건조는 제한되었다. 이미 건조 중이던 전함 및 대형 중순양함은 1920년대에 항공모함으로 용도 변경되었다(1920년대와 30년대에 각국이 항공모함을 취역시킨 원인은 항공모함의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군축 조약에서 탈퇴한 일본은 신형함 건조를 1930년대 초부터 진행해 왔으나, 미국은 1937년 이후부터 서둘러 신형함 건조를 시작했고, 1941년 12월까지 신규 건조된 최신형 전함은 단 2척이었다. 위의 피해 현황에도 나오지만, 전쟁 초기 군함이 부족했던 미국은 가능한 한 인양하여 수리한 후에 재투입했다. 문제가 된 구식 전함 가운데 애리조나호와 연습 표적함이던 유타호를 제외한 나머지 전함은 모두 일선에 복귀하였다.
뒤늦게 신형함 건조를 시작한 탓에 가용 가능한 군함은 구식함뿐이었던 미군이었지만, 일본군은 그 함대가 두려워 조기에 기습했던 것이다. 참고로 신형함 건조 시작 이후에도 미군은 전함이 모자라 진주만 공격 당시 파손된 구식 전함을 수리해서 다시 전투에 투입했다.
특히, 만약 미군이 일본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게 둘 필요도 없이 차라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중간 해역에서 요격하여 참전 명분은 명분대로 얻고 훨씬 적은 피해로 일본을 무력화할 수 있었을 것이나, 실제로는 진주만이 궤멸만 간신히 면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는 점에서도 미국이 일본의 공격을 유도했다는 설은 신빙성이 부족하다.
진주만 공격 후 일본인들의 피해
일본의 진주만 공격후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큰 반감을 사게 되었다. 미국 정부는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인수용소를 만들었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일본인들을 강제수용시켰다.
애리조나호 기념관
진주만에 있는 애리조나호 기념관(USS Arizona Memorial)은 진주만 공격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애리조나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애리조나호는 그 당시 공격을 받은 지 불과 9분만에 침몰하였고, 총 인명피해 2403명 중 1177명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선체를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그 위에 기념관을 만들었다. 이 기념관을 설계한 사람은 알프레드 프레이스이고 2차 세계대전 이후 1958년에 기념관 착공 그로부터 3년 후에 완공되었다.
The Attack on Pearl Harbor: An Illustrated History by Larry Kimmett and Margaret Regis is a careful recreation of the "Day of Infamy" using maps, photos, unique illustrations, and an animated CD. From the early stages of Japanese planning, through the attack on Battleship Row, to the salvage of the U.S. Pacific fleet, this book provides a detailed overview of the attack.
At Dawn We Slept: The Untold Story of Pearl Harbor by Gordon W. Prange is an extremely comprehensive account of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Pearl Harbor attack and is considered by most scholars to be the best single work about the raid. It is a balanced account that gives both the Japanese and American perspectives. Prange spent 37 years researching the book by studying documents about Pearl Harbor and interviewing surviving participants to attempt the most exhaustive account of what happened: the Japanese planning and execution, why US intelligence failed to warn of it, and why a peace agreement was not attained. The book is the first in the so-called "Prange Trilogy" of Pearl Harbor books co-written with Donald Goldstein and Katherine Dillon, the other two being:
Pearl Harbor: The Verdict of History – a dissection of the various revisionist theories surrounding the attack.
1941년 12월 7일: The Day The Japanese Attacked Pearl Harbor – a recollection of the attack as narrated by eyewitnesses.
Day of Infamy by Walter Lord was one of the most popular nonfiction accounts of the attack on Pearl Harbor.[16]
Pearl Harbor: Final Judgment by Henry C. Clausen and Bruce Lee tells of Clausen's top-secret investigation of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Pearl Harbor attack. Much of the information in this book was still classified when previous books were published.
Pearl Harbor Countdown: Admiral James O. Richardson by Skipper Steely is an insightful and detailed account of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attack. Through his comprehensive treatment of the life and times of Admiral James O. Richardson, Steely explores four decades of American foreign policy, traditional military practice, U.S. intelligence, and the administrative side of the military, exposing the largely untold story of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Japanese attack.
Pearl Harbor Papers: Inside the Japanese Plans, released by Goldstein and Dillon in 1993, used materials from Prange's library to further flesh out the Japanese perspective of the attack, including diaries from some officers and ship logs.
Pearl Harbor: The Seeds and Fruits of Infamy by Percy L. Greaves, Jr. The first part provides a detailed history of pre-war U.S.-Japan relations, documenting the sources of rising tension. The second part suggests that the attack on Pearl Harbor was neither unexpected nor unprovoked.
Morison, Samuel Eliot (2001), 《History of United States Naval Operations in World War II: The rising sun in the Pacific, 1931 – April 1942》,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ISBN0-252-06973-0
George Edward Morgenstern. Pearl Harbor: The Story of the Secret War. (The Devin-Adair Company, 1947) ISBN978-1-299-05736-4. The detailed analysis and documentation of event and its many boards of enquiry set up at this time.
James Dorsey. "Literary Tropes, Rhetorical Looping, and the Nine Gods of War: 'Fascist Proclivities' Made Real," in The Culture of Japanese Fascism, ed. by Alan Tansman (Durham & London: Duke UP, 2009), pp 409–431. A study of Japanese wartime media representations of the submarine component of the attack on Pearl Harbor.
McCollum memo A 1940 memo from a Naval headquarters staff officer to his superiors outlining possible provocations to Japan, which might lead to war (declassified in 1994).
Gordon W. Prange, At Dawn We Slept (McGraw-Hill, 1981), Pearl Harbor: The Verdict of History (McGraw-Hill, 1986), and 1941년 12월 7일: The Day the Japanese Attacked Pearl Harbor (McGraw-Hill, 1988). This monumental trilogy, written with collaborators Donald M. Goldstein and Katherine V. Dillon, is considered the authoritative work on the subject.
Larry Kimmett and Margaret Regis, The Attack on Pearl Harbor: An Illustrated History (NavPublishing, 2004). Using maps, photos, unique illustrations, and an animated CD, this book provides a detailed overview of the surprise attack that brought the United States into World War II.
Walter Lord, Day of Infamy (Henry Holt, 1957) is a very readable, and entirely anecdotal, re-telling of the day's events.
W. J. Holmes, Double-Edged Secrets: U.S. Naval Intelligence Operations in the Pacific During World War II (Naval Institute, 1979) contains some important material, such as Holmes' argument that, had the U.S. Navy been warned of the attack and put to sea, it would have likely resulted in an even greater disaster.
Michael V. Gannon, Pearl Harbor Betrayed (Henry Holt, 2001) is a recent examination of the issues surrounding the surprise of the attack.
Henry C. Clausen and Bruce Lee, Pearl Harbor: Final Judgment, (HarperCollins, 2001), an account of the secret "Clausen Inquiry" undertaken late in the war by order of Congress to Secretary of War Henry L. Stimson.
Andrew Krepinevich, [1](Center for Strategic and Budgetary Assessments) contains a passage regarding the Yarnell attack, as well as reference citations.
Roberta Wohlstetter, Pearl Harbor: Warning and Decision, (Stanford University Press: 1962). Regarded by many as the most important work in the attempt to understand the intelligence failure at Pearl Harbor. Her introduction and analysis of the concept of "noise" persists in understanding intelligence failures.
John Hughes-Wilson, Military Intelligence Blunders and Cover-Ups. Robinson, 1999 (revised 2004). Contains a brief but insightful chapter on the particular intelligence failures, and broader overview of what causes them.
Douglas T. Shinsato and Tadanori Urabe, "For That One Day: The Memoirs of Mitsuo Fuchida, Commander of the Attack on Pearl Harbor". (eXperience: 2011) ISBN978-0-9846745-0-3
Horn, Steve (2005), 《The Second Attack on Pearl Harbor: Operation K And Other Japanese Attempts to Bomb America in World War II》, Naval Institute Press, ISBN1-59114-388-8
Daniel Madsen, Resurrection-Salvaging the Battle Fleet at Pearl Harbor. U.S. Naval Institute Press. 2003. Highly readable and thoroughly researched account of the aftermath of the attack and the salvage efforts from 1941년 12월 8일 through early 1944.
Takeo, Iguchi, Demystifying Pearl Harbor: A New Perspective From Japan, I-House Press, 2010, ASIN: B003RJ1AZA.
Haynok, Robert J. (2009). “How the Japanese Did It”. 《Naval History Magazine》 (United States Naval Institute) 23 (6).
↑Kahn, David (1996). 《The Codebreakers: The Comprehensive History of Secret Communication from Ancient Times to the Internet》. Simon and Schuster. ISBN978-1-4391-0355-5.
↑Prange, Goldstein & Dillon 1981, 485쪽 괄호 없는 하버드 인용 error: 대상 없음: CITEREFPrangeGoldsteinDillon1981 (help). "[The] fourteenth part was not a formal declaration of war. It did not even rupture diplomatic relations. It merely broke off the discuss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