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과 체트니크 운동은 처음에 추축국의 통치에 저항했다. 그러나 1941년 이후 체트니크는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에 항복할 때까지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이탈리아 점령군과 협력했으며,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에는 독일 국방군과 우스타샤와 협력했다.[2][3] 추축국은 파르티잔을 격멸하기 위해 여러 차례 공세를 펼쳤으며, 네레트바강 전투와 수체스카강 전투에서는 그 목표를 거의 이룰 뻔했다.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파르티잔은 테헤란 회담에서 서방 연합군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전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국가의 기초를 닦으면서 신뢰할 수 있는 전투 부대로 남았다.서방 연합군의 병참과 공군의 지원, 베오그라드 공세 당시 소련붉은 군대의 진격으로, 파르티잔은 결국 유고슬라비아 전체, 그리고 트리에스테와 케른텐주의 국경 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내용주
↑체트니크는 1944년까지 미국, 영국 등 연합국의 지원을 받았고, 사다리 작전 등에서 미국 공군을 구출하는 임무를 맡기도 했다.
각주
↑ 가나Ramet 2006, 142쪽. harv error: 대상 없음: CITEREFRamet2006 (help)
↑ 가나Ramet 2006, 145–155쪽. harv error: 대상 없음: CITEREFRamet2006 (he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