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6년 이후로는 합스부르크 가의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1804년부터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가 헝가리의 왕위를 계승했다. 다만 예외가 두 명 있다. 한 명은 헝가리의 페르디난드 4세로, 아버지인 페르디난트 3세가 생전에 헝가리의 왕위를 양보받아 차기 황제로서 로마의 왕으로도 되었지만, 제위를 계승하기 전에 사망했다. 이와 같이, 헝가리의 왕위는 제위 계승에 앞서 양위되는 것이 많았다. 다른 한 명은 마리아 테레지아로, 그녀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아니었지만, 헝가리 여왕 외에도 보헤미아 여왕이나 오스트리아 여대공이기도 하였다.
반대로 말하면, 그녀의 남편인 프란츠 1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지만, 오스트리아 대공이나 헝가리 국왕에는 즉위하지 않았다. 이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가의 유일한 후계자이면서, 남자가 아닌 여자였기 때문에 살리카 법전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을 참조).
국가 원수
이 문단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 문단을 편집하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은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2013년 6월)
헝가리는 1918년에 공화국을 선언했으나 1920년 연합국과의 트리아농 조약에서 공화정이 부인되어 이후 헝가리 왕국은 1946년까지 존속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 카를 1세는 망명 후에도 오스트리아 황제와 헝가리 왕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황제로의 복위(復位)가 불가능해지자 그는 헝가리 왕 카로이 4세로서 1921년에 두 차례에 걸쳐 헝가리에 입국해 복위를 시도했다. 하지만 연합국의 반발과 섭정(攝政)인 호르티 미클로시의 비협조로 좌절됐으며, 헝가리 의회는 정식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폐위를 결정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 제독 출신인 호르티 미클로시는 적당한 인물을 왕위에 올리려 했지만 결국 왕위는 공석으로 남았고, 그가 실질적인 국가원수로서 1946년까지 헝가리를 통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