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 (용경후)

진서(陳署, ? ~ 기원전 182년)는 초한전쟁기 ~ 전한 초기의 군인이다.

행적

졸병으로서 고제를 따랐다.

한왕 원년(기원전 206년) 패상(霸上)에서 거병하여 알자(謁者)가 되어 항우를 치고 조구를 죽인 공로로 (龍侯)[1]에 봉해지고 식읍 1,000호를 받았다.

고후 6년(기원전 182년)에 죽어 시호(敬)이라 하였고, 아들 진견이 뒤를 이었다.

출전

  • 사마천, 《사기》 권18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
  • 반고, 《한서》 권16 고조공신후자연표(高惠高后文功臣表)

각주

  1. 봉국을 《사기》에서는 , 《한서》에서는 용양(龍陽)이라고 하는데, 왕선겸은 《수경주》에 태산군 박현(博縣) 용향(龍鄕)이 진서의 봉국이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들어 사기가 옳다고 고증하였다. 한편 사마정은 《색은》에서 여강군 용서현(龍舒縣)이 봉국인 것 같다고 추정하였다.
선대
(첫 봉건)
전한의 용후
기원전 199년 음력 9월 기미일 ~ 기원전 182년
후대
아들 진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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