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설 (周緤, ? ~ 기원전 175년 )은 중국 진나라 말기, 전한 초의 인물로, 패현 사람이며, 전한 고제 의 개국 공신이다.
원래 고제의 참승[ 1] 으로, 고제가 패현에서 처음 거병할 때부터 고제를 따랐으며, 고제가 삼진(옹 · 새 · 적)을 평정할 때까지 참승으로서 항상 수행했다. 또 항우와 형양에서 대치할 때에는 적의 용도(甬道, 군량 수송로)를 끊었으며, 평음을 나와 한신 의 군사를 양국에서 만났다. 고제 6년(기원전 201년 )에 신무후(信武侯)에 봉해져 식읍 3300호를 받았으며, 고제 12년(기원전 195년 )에는 괴성후(蒯成侯)[ 2] 로 옮겨 봉해졌다. 고제가 친히 진희 를 치려 하자 울면서 말렸고, 고제는 주설에게 전문을 종종걸음으로 다니지 않아도 되고, 사람을 죽여도 사형에 처해지지 않는 특권을 주었다. 전한 문제 5년(기원전 175년 )에 죽어, 시호를 정(貞) 혹 존(尊)이라 했다.[ 3] [ 4] [ 5]
가계
각주
↑ 수레를 함께 타고 모시는 일, 혹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
↑ 혹 배성후(䣙成侯), 빙성후(憑成侯)라고도 한다.
↑ 사마천 : 《사기》 권98 부근괴성열전제38
↑ 위와 같음, 권18 고조공신후자연표제6
↑ 반고 : 《한서》 권41 번역등관부근주전제11
1 ~ 10위 11 ~ 20위 21 ~ 30위 31 ~ 40위
비어후 진하 (31)
평도후(32) 패가(沛嘉)|공사희(工師喜)
무강장후 장불식(33)
여려[ 2] 애후 주조(34)
대정후 대야(35)
세제후 여박 (36)
해양제신후 요무여(37)
척구의후 당려 (40)
41 ~ 50위
동무정후 곽몽(41)
고원제후 병천 (41)
악성절후 정례(42)
선곡제후 정의(43)
위기장후 주정 (44)
창무정신후 선녕(45)
강양제후 화무해(46)
곡역헌후 진평 (47)
동모경후 유조(48)
균장후 장평(48)
복양강후 진서 (49)
의씨경후 진속
51 ~ 60위 61 ~ 70위 71 ~ 80위
청간후 질중동
강간후 유승(留勝)|강어후 유힐(留肹)
영릉이후 여신
축아효후 고읍(高邑)|고색(高色)
자조단후 적|극주
오제후 양성연
당양애후 손적
영장후 위선(魏選)|위속(魏遬)
장절후 모택
기신광후 진창
81 ~ 90위 91 ~ 100위
순경후 온개
역간후[ 5] 정흑(92)
고릉어후 왕주(92)
무원정후 위거
오방장후 양무
번장후|평엄후 강첨(彊瞻)|장첨사(張瞻師)
분양(장)후 근강(96)
심택제후 조장야(趙將夜)|조장석(趙將夕)(98)
송자혜후 허치
알지절후 풍해감(馮解敢)|풍해산(馮解散)
101 ~ 110위 111 ~ 120위 121 ~ 130위 131 ~ 137위 열외 ※ 번호가 없을 때에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순서가 내려간다. 이름이나 시호, 봉작의 표기가 《사기》와 《한서》가 다를 때에는 (《사기》의 표기)|(《한서》의 표기)로 쓴다. 이탤릭체는 고조 사후 봉해졌으나 위계가 기록된 경우다.
↑ 《사기》에서는 21위, 《한서》에서는 22위라 한다.
↑ 상제를 피휘해 융려라고도 한다.
↑ 《사기》에는 순위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 《사기》에서는 '양하제애후'에 이름은 기록이 없고, 《한서》에서는 '양하제후 기석'으로 기록되어 있다.
↑ 《사기》에서는 봉읍을 마(磨)라 했으나, 《사기색은》에서는 이를 오류라고 했다.
↑ 《사기》에서는 116위, 《한서》에서는 126위라고 한다. 《사기》를 따를 경우, 척새와 순위가 중복된다.
↑ 원래는 항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