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미치하루는 겐나 2년 (1616년)에 성을 来島에서 久留島로 고쳤다 (발음은 똑같은 쿠루시마이다.). 3대 미치키요는 칸분 3년 (1663년), 참근교대 때의 비행지(飛び地)인 벳푸만두 세이미나토 (오이타현하야미군히지마치 토요오카)에서 세토나이카이를 항해하던 중, 스오국야시로지마 앞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 번주의 동생 미치카타의 어좌선(御座船)이 좌초, 전복, 미치카타를 포함해 타고 있던 가신 10명 전원이 익사한 참사가 벌어졌다. 이후 미치키요는 동생 미치사다에게 1천석, 미치하루에게 5백석을 각각 나누어주었다.
칸분 4년 (1664년), 와타나베 고로에몬이 비행지(飛び地)인 하야미군 츠루미무라 (벳푸시)의 테라시유(照湯)의 유노하나(침전물)로 명반 제조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교호 10년 (1725년)에 와키노스케가 같은 츠루미무라의 묘반 온천에서 본격적인 생산을 실시, 산출량은 전국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인접한 막부령 노다무라에서도 생산을 실시, 이를 합하면 70%), 번의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명반 제조기술은 2006년 (헤이세이 18년)에 벳푸 묘반 온천의 유노하나 제조기술로써 국가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묘반지구 번지(藩地) 중 일부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형태로 2021년 5월, <모리번 별저>라는 이름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오이타현벳푸시 오구라 5-3)
번청의 위치를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다른 지방으로 이전한 번도 있다. 순번은 『삼백 번 보신 전쟁 사전(三百藩戊辰戦争事典)』에 따른다. 메이지 시대의 변화: ★=신설、●=폐지、○=이전・개칭、▲=본번에 병합. 소괄호()안은 이전・개칭・병합된 후의 번명이다. 소괄호가 없는 것들은 현에 편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