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의 막내아들. 성균관의 박사이자 종학의 강사, 이후 승정원의 주서. 경혜공주의 학습을 담당하는 강사로 배치되었으나, 세령과 경혜공주가 서로 뜻이 맞아 세령이가 대신 강론에 들어가면서 그녀와 얽히게 되었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사랑해서는 안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딸이었다.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맏딸. 도도하지만 철이 없고 오만방자하다. 일가친척 중에서 세령과는 허물없이 지내는 가장 절친한 사이였으나, 아버지들의 권력 싸움으로 인해 세령과 멀어지게 된다. 왕가 내의 혈투로 인해 동생과 남편을 잃고 자신조차도 노비가 되는 기구한 운명이다.
신숙주의 막내아들. 한성부의 판관. 승유의 절친한 친구. 아버지 신숙주와 수양대군 사이의 밀약을 계기로 벗인 승유와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마음에 뒀던 세령과 승유의 관계에 분노를 느끼면서, 승유를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따른다. 그 후 1467년에 이시애의 난때 평정을 하다가 화살을 맞고 죽음을 맞이한다.
조선의 우의정, 좌의정. 세종 이래로 왕가에 절대 충성을 맹세한 충신. 숙적 수양대군에게 혼담을 받았으나, 승유를 부마도위에 올리려는 문종의 제안으로써 그 관계가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 문종에게 세자를 끝까지 보필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로부터 수양대군과 평행선을 긋는다. 결국 거대한 권력 쟁투 속에서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이 칼에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조선의 7대 임금 세조. 본명은 이유(李瑈). 세종의 둘째 아들. 문종의 동생이자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의 둘째 형이다. 끝이 없는 야심가이지만 가정에서는 한없이 따뜻한 아버지이다.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웠던 김종서에게 화해의 손길 차원에서 세령과 승유의 혼사를 청했으나, 거절당하면서 그와 철저하게 등을 지게 된다. 승유의 인물됨을 보고 아쉬워하지만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면서 김종서를 비롯한 모든 정적을 제거한다. 그리고 단종으로부터 양위받아 최고의 권력에 올라선다.
한성부 일대를 주름잡는 '청풍관 왈패'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수양대군과 한명회를 위해 비밀리에 병력양성에 나서고 살인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계유정난 밤에는 김종서를 죽였다. 그 이후 김종서 일파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바닷길에 나섰다가, 아버지를 죽인 일에 대해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던 승유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1453년에 왕족이었던 수양대군이 정적이었던 김종서와 그 일파를 제거하며 정권을 장악한 사건. 이후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임금 자리를 양위받는 계기가 된다.
금계필담
1873년에 서유영(徐有英)이 쓴 조선의 역대 임금과 관련된 설화집.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와의 사랑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 드라마의 직접적인 배경이다.[2]
아래의 내용은 《금계필담》에 기록된 '세희와 김종서의 손자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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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세조왕이 친조카인 단종을 멀리 강원도 영월로 유배시키려할 때에 이의 옳지 못함을 직간하던 사람 중의 한 분 바로 세조의 공주였다. … 그러자 세조는 크게 노하여 한낱 아녀자인 공주가 주제넘게 국사에 관여하여 도리어 일을 그르친다고 죽이려 하였다. 왕비는 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알고, 남의 이목을 피하여 노비와 함께 많은 금자를 내주어 야간 도주케 하며 이르기를 "공주는 이제 왕실의 자손이 아니니, 어느곳에 가서 살던지 신분을 숨기고 평민이 되어 부디 몸조심하며 편히 잘 살아라"하였다. … 이리저리 방황하던 공주가 송림이 울창한 심산 유곡인 지금의 옥양동에 이르자 마침내 날이 저물어 숙소를 찾게 되었다. 마침 멀리 불빛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가 보니 보굴암 입구의 초막에서 나온 불빛이었다. 하룻밤만 유하려고 주인을 찾으니 초막에서 나온 주인이 엄두리 총각이라 공주는 차마 말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여러날의 노독을 이야기하였다. 총각도 처음에는 낯선 규수의 유숙을 거절하다가 딱한 공주의 사정을 듣고서는 자기 방을 비워 주었다. 공주는 총각이 부엌에서 잠을 자겠다는 소리에 범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노비와 의논하여 총각과 평생가약을 결심하게 되었다. … 세월이 흘러 장남이 출생하게 되자, 공주는 농밑 깊숙히 넣어 두었던 금자를 꺼내 놓으며 남편에게 자신의 신분과 그동안 감춰야만 했던 내력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공주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이 원수를 다리 위에서 만나 자식까지 낳았으니 이일을 어찌하리요 하며 탄식하였다. 그는 바로 김종서의 친손자로서 환란 당시 구사일생으로 집을 빠져나와 이 심산 궁곡에서 은신중이었던 것이다. … 세조가 지나다 보니 웬 아낙이 길가에 엎드려 슬피 우는지라, 가까이 불러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아낙은 몇해전 자신이 죽이려 했던 그 공주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되었던 세조는 늘 공주의 일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몹시 기뻐하며 공주의 결혼생활을 허락하였다. …(후략)…
↑이세령은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고 야사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인물 세희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금계필담에 따르면 "세희(이세령)가 김종서를 죽이지 말라고 말했다가 쫓겨나 김종서의 손자와 함께 숨어지냈다. 후일 세조가 등창(피부병)이 도져서 한 사원을 들렀는데 세희와 닮은 아이들을 봤다"고 한다. 하지만 왕조의 공식 기록인 '실록'이 왕의 뒷간 출입 내역 같은 소소한 일상까지도 담고 있는데 세령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실록에 대한 열람은 임금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실존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종실록 112권 28년 6월 6일 2번째 기사에서는 수양대군이 1446년 당시 1남 2녀를 두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서 세희의 실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정사(正史)와는 달리 민간에서 쓰여진 야사(野史)이므로 보편적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경상북도청, 참고 문헌 : 상주지, 검 토 : 화북면사무소 오장엽, 고 증 : 상주문화원 사무국장 박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