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키야 학파(산스크리트어: सांख्य) 또는 샹키아 학파는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의 하나로, 불교 경전 및 논서에서는 수론파(數論派)로 한역(漢譯)되어 불리고 있다.[1]힌두교의 전통에 따르면, 상키아 학파의 시조는 카필라(Kapila: BC 4~3세기)이다.[1] 그러나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랜 원전은 이스바라크리슈나(Iśvarakṛṣṇa · 자재흑 · 自在黑: AD 4세기 또는 3세기)의 《삼키아송(Sāṁkhya Kārikā)》이다.[2]
상키아 학파는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 가장 오랜 학파이다.[1]산스크리트어 상키아(सांख्य · Sāṁkhya)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숫자(Number)"로,[3] 이 때문에 상키아 학파는 수론파(數論派)로 한역되었다. 이 때의 수(數)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수열 또는 나열(enumeration)"을 의미하는데, 즉 삼키아 학파(수론파)라는 명칭은 우주의 전개 원리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3]
상키아 학파에 따르면, 푸루샤는 순수의식으로서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고 다만 프라크리티를 관조(觀照)할 따름이다. 그러나 질료인(質料因)인 프라크리티는 물질(질료)을 전개하는 힘을 지니며 그 결과로서 나오는 물질은 구성의 우열에 따라 차이가 생겨나고 푸루샤와 결합하여 개체(아항카라·Ahamkara)가 된다. 개체(아항카라·Ahamkara)의 세계는 고(苦)인데, 고(苦)는 푸루샤와 프라크리티의 결합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푸루샤가 프라크리티를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해탈(解脫)이다. 그렇지만 푸루샤는 불변순수(不變純粹)이기 때문에 해탈에 의한 변화는 없다. 해탈을 위한 푸루샤의 지(智), 즉 아트마 즈냐나를 얻기 위해서는 요가의 수행(修行)이 강조되었다.[1]
푸루샤와 프라크리티를 두 가지 최고 원리로 하는 상키아 학파의 이원론적 철학은, 이(理)와 기(氣)를 두 가지 최고 원리로 하는 중국 및 한국 철학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그 견해가 유사하며, 서양철학의 경우 데카르트의 레스 코그니탄스(res cogitans: 생각하는 자 또는 사유를 속성으로 하는 실체)와 레스 엑스텐사(res extensa: 연장하는 자 또는 연장을 속성으로 하는 실체)의 심신이원론(心身二元論)과 유사하다. 푸루샤의 개념은 서양의 밀교 중의 하나인 헤르메스주의의 신에 대한 견해 중에서 신이 모든 악에서 벗어나 있는 지고한 선(Supreme Good)이라는 개념과 유사하다. 반면 헤르메스주의의 신에 대한 견해 중에서 신이 선과 악을 포괄하는 전체 존재라는 헤르메스주의의 개념은, 상키아 철학의 기초가 되었던 우파니샤드의 철학자 웃다라카의 1원론적(一元論的) 철학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