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11월 19일까지 최종 후보지에서는 후보 도시 파일을 제출해야 했다. IOC 평가 조사단은 2005년 2월~3월 사이에 최종 후보지를 방문했는데 파리는 평가 조사단이 방문했을 때 두 가지 고초를 겪어야했다. 하나는 평가 조사단의 입국과 맞물려서 엄청난 수의 파업이 일어난 것이며 또 하나는 파리 올림픽 유치 위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IOC 위원인 기 드뤼(Guy Drut)가 프랑스에서 부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이다.[10]
2005년6월 6일, IOC에서는 평가 조사단이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치 활동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지만 이 보고서에서는 파리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으며 그 뒤를 런던이 이었다. 뉴욕과 마드리드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11]
제117차 IOC 총회가 다가오면서 파리는 승리를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세 번째 도전이라는 것도 영향을 주었다. 원래 런던은 이때까지만 해도 파리에 비해 한참 뒤쳐져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2004년 5월 19일, 런던 올림픽 유치 위원회 위원장을 서배스천 코(Sebastian Coe)가 맡으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서서히 런던과 파리를 박빙으로 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12] IOC 총회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런던과 파리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2005년 7월 1일, 승자가 어디일 것 같냐는 질문의 대답에 자크 로게는 이렇게 말했다.
“
저는 IOC 위원들이 어떻게 투표할지 모르니까 결과 또한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직감이 말하길, 엎치락뒤치락한다고 하네요. 어쩌면 10표, 혹은 그 이하로 승부가 갈릴 것 같습니다.[출처 필요]
”
2005년7월 6일, 싱가포르의 래플스 시티 컨벤션 센터(Raffles City Convention Centre)에서 제117차 국제 올림픽 위원회 총회가 열렸다. 이곳에 당시 영국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가 5개 후보 도시 중 유일하게 참석했다.[13]모스크바가 가장 먼저 탈락했고 뒤 이어서 뉴욕과 마드리드가 탈락했다. 마지막으로 런던과 파리 두 도시가 남게 되었다. 4차 투표가 끝난 뒤 나온 발표에서 런던이 54표를 얻으며 50표를 얻은 파리를 제치고 2012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
The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has the honor of announcing that the games of the 30th Olympiad in 2012 are awarded to the city of 'London'.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12년에 열리는 제30회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런던'을 발표해서 영광입니다.)
프랑스의 수많은 일간지에서 파리의 패배를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가 투표 전에 "우리는 구역질이 나는 음식같은 걸 갖고 있는 이 사람들(영국인)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영국 음식은) 핀란드 다음으로 형편없습니다."라고 한 발언을 문제삼았다.[14] 핀란드 국적의 IOC 위원은 2명이 있다. 한 언론은 토니 블레어가 전날 밤 몇 명의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IOC 위원과 밀실 회동을 가진 것이 최종 투표에서 영향을 주었다고 보도했다.[15] 런던이 개최권을 얻었다는 보도가 났을 때, 영국 언론들은 프랑스와 잉글랜드(다른 후보 도시 포함)에 모인 희망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Archived 2023년 2월 9일 - 웨이백 머신을 보여주면서 기쁨에 넘치는 런던 시민의 모습과 그와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는 파리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6][17][18] 그런데 24시간 후에 일어난 폭탄 테러 사건이 이 기쁨을 빛바래게 했다.[19]
2005년 12월, IOC 직원인 앨릭스 길래디(Alex Gilady)는 런던은 투표 오류로 인해 파리를 꺾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런던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이것에 대해 부정하며 "결국 이것은 비밀 투표였다. 이것은 한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이 결과에 대해서 우린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20]
개막식은 2012년8월 12일 오후 9시(현지 시간), 개막식과 마찬가지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진행되었다.
경기
참가국
2012년 하계 올림픽에는 총 204개국의 국가가 참가했으며, 10,000명 이상의 선수들이 참여했다.[21] 이는 현재까지 영국에서 열린 종합 스포츠 대회 중, 런던에서 열린 1948년 하계 올림픽과 맨체스터에서 열린 2002년코먼웰스 게임의 참가 선수보다 많은 수이다.[22]
이번 대회에서는 여자 복싱 종목이 처음으로 추가되어, 36명의 선수들이 각각의 경기에서 시합을 겨룬다. 그리고 원래 여러 사격 경기들은 영국 총기법에 의해서 불법이었지만, 올림픽 특별 허가가 내려진 덕분에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26][27] 또한 테니스의 혼합 복식 종목은 1924년 하계 올림픽 이후 다시 정식 올림픽 종목이 되었다.[28]
런던 올림픽에서는 기존 올림픽을 따라서 28종류의 종목을 유치했으나, 런던이 2012년 올림픽을 유치한 이틀 후 치러진 IOC 2차 투표에서 야구와 소프트볼이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IOC는 재검토를 위한 표를 잃은 후인 2006년 동계 올림픽 동안 두 종목을 제외시키고,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29] 이렇게 두 종목을 제외시킨다는 결정을 내린 후, IOC는 다시 두 종목을 올림픽에 포함시킬지 말 것인지에 대한 투표를 실시했다. 새로 들어갈 스포츠 종목 후보는 가라데, 스쿼시, 골프, 롤러 스포츠, 7인제 럭비였다. 이 중 가라데와 스쿼시 두 종목은 최종 후보였지만, 둘 다 정식 종목이 되는 데 필요로 하는 과반수를 넘지 못했다.[29]
영국이 개최국으로서 1960년 로마 올림픽 이후 52년 만에 축구에서 단일팀을 출전시켰다. 그러나 8강전에서 대한민국에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여 탈락하였다.
미국의 수영 선수인 마이클 펠프스가 이 대회에서 7개 종목에 출전해 4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획득하여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딴 선수가 되었다.
2005년 IOC 총회 결과 야구와 소프트볼이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되고,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 복싱 경기(총 3체급)가 열렸다.
테니스 여자 단식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도중 갑자기 바람의 의해 미국 국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선수들과 관중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남자 마라톤에서 우간다의 스티븐 키프로티치가 런던 언덕에서 케냐 선수 2명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우간다는 뮌헨 올림픽 당시 참가한 남자 400m 허들 존 아키부아 이후 종합 육상으로써는 40년 만에 금메달이었으며, 남자 마라톤에서만 따질 경우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이었다.
↑“Olympics – Countries”. 《BBC Sport》. 2012년 7월 12일에 확인함. From the 27th of July 2012 – 204 countries will send more than 10,000 athletes to compete in 300 ev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