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선수권 대회(The Championships, Wimbledon)는 영국런던윔블던에서 열리는 세계 4대 그랜드 슬램테니스 대회의 하나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테니스 대회인 이 대회는 널리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2][3][4][5] 1877년부터 런던 머튼 구의 윔블던에 위치한 올 잉글랜드 클럽에서 개최되어 왔다. 그랜드 슬램 대회 중 유일하게 잔디 코트를 사용한다.
윔블던은 매년 6월 말에서 7월 초까지 2주간 열린다. 대회의 마지막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여자 단식과 남자 단식 결승 경기를 마지막으로 대회가 끝난다. 대회는 5개의 메인 경기 부문과 4개의 주니어 경기 부문, 4개의 초청 경기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윔블던은 그랜드 슬램 대회 중에서는 호주 오픈과 프랑스 오픈에 이어 연중 세 번째로 개최되며, 이후에 US 오픈이 개최된다. 남자 대회로는 퀸즈 클럽 챔피언십과 게리 웨버 오픈이 각각 영국 런던과 독일 할레(Halle)에서 웜업(warm-up) 대회로서 개최된다. 여자 대회로는 버밍엄에서 AEGON 클래식이 웜업 대회로 열리며, 또한 유니세프 오픈과 AEGON 인터내셔널 대회도 각각 네덜란드 스헤르토헨보스와 영국 이스트번에서 여자 웜업 대회로서 개최된다.
이 대회는 전통적으로 참가선수들에게 엄격한 복장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딸기와 크림을 간식으로 즐기는 것과, 국왕이 대회를 참관하는 것도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2009년에는 잦은 우천으로 인한 경기 지연을 막기 위해 센터 코트에 개폐식 지붕을 설치하였다.
역사
초기
올 잉글랜드 론 테니스 앤드 크로케 클럽(The All England Lawn Tennis and Croquet Club)은 1868년 설립된 사설 클럽으로, 최초 명칭은 ‘올 잉글랜드 크로케 클럽’이었다. 이 클럽에서 사용한 최초의 경기장은 윔블던 워플로드(Worple Road)에 있었다.
1874년 또는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월터 클롭튼 윙필드(Walter Clopton Wingfield) 장군에 의해 최초에는 스티케라고 불렸던 스포츠인 론 테니스가 고안되었고, 1875년에 올 잉글랜드 클럽에서 이것을 클럽 활동에 추가하였다. 1877년 봄에는 클럽 명칭을 ‘올 잉글랜드 크로케 앤드 론 테니스 클럽’으로 바꾸었고, 최초의 론 테니스 챔피언십을 개최하여 클럽 명칭의 변경을 널리 알렸다. 이 대회를 위해 이전까지 사용되던 매릴본 크리켓 클럽에서 만든 경기규정도 새롭게 정비하였다. 네트 및 네트 포스트의 높이, 네트로부터 서비스 라인까지의 거리 등 일부 세부적인 코트 규격을 제외하면 당시 제정된 규정은 오늘날 현대 테니스의 규정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갖고 있었다.
1877년7월 9일 시작된 첫 대회에서는 남자 단식 경기만이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스펜서 고어(Spencer Gore)가 구식 해로비안(Harrovian) 라켓을 사용하여 우승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약 200명의 유료 관람객들이 경기를 관전했다.
전체 경기장에서 메인 코트는 다른 코트들의 중앙에 위치하게 배치되었는데, 이 때문에 메인 코트에는 ‘센터 코트’(Centre Court)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후 1922년 경기장이 현재의 처치로드(Church Road)로 옮겨오면서 메인 코트의 위치는 중앙이 아닌 다른 위치로 배치되었지만 기존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에 4개의 코트가 경기장 북측에 새로 만들어지면서, 센터 코트의 위치는 다시금 실제로 전체 경기장의 중앙에 위치하게 되었다.
1882년에 이르러서는 클럽의 활동이 거의 론 테니스로 한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클럽 명칭에서 ‘크로케’가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서적인 이유에서 이 단어는 1889년 다시 복원되어, 이 때부터 클럽의 명칭은 올 잉글랜드 테니스 앤드 크로케 클럽이 되었다.
1884년에는 대회에 여자 단식과 남자 복식이 추가되었으며, 1913년에는 여자 복식과 혼합 복식이 추가되었다. 1922년 이전까지 대회의 우승자는 자동으로 이듬해 대회 결승에 진출하고 새로운 결승 진출자가 이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옛 윔블던에는 톱랭킹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였으며, 이는 1968년 오픈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남자 단식에서는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77년만에 2013년 앤디머레이가 우승, 그리고 여자 단식에서는 1977년 버지니아 웨이드 이후로 영국 출신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여자 주니어 단식 에서는 1984년 애너벨 크로프트와 2008년 로라 롭슨이 영국인 출신으로 우승하였다. 윔블던 효과는 이렇게 영국에서 개최하는 대회에서 자국 선수가 우승하지 못하는 현상을 경제 현상 등에 비유하는 경제 용어이다.
1937년에는 대회 개최 이래 최초로 경기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다.
1990년대 및 그 이후
윔블던은 가장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로서의 위상을 21세기에도 이어 나간다는 목표 아래 관람자와 참가선수, 대회진행요원들 및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대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장기 계획을 1993년에 발표하였다.
이 계획의 1단계는 1997년 아오란지 파크(Aorangi Park)에 새로운 1번 코트와 방송 센터, 두 면의 추가 잔디 코트 및 언덕 지역 아래에 처치로드와 서머셋로드(Somerset Road)를 잇는 터널을 완공하면서 완성되었다.
2단계 계획은 옛 1번 코트 경기장을 철거하여 여기에 선수 및 기자, 진행요원, 회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춘 새로운 밀레니엄 빌딩을 건축하는 것과, 센터 코트의 서쪽 스탠드에 728석의 좌석을 추가 설치하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3단계 계획은 입구 빌딩과 직원 숙소, 박물관, 은행 그리고 티켓 오피스를 설치파는 것으로 완료되었다.[6]
2009년에는 센터 코트에 개폐식 지붕을 설치하여 우천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경기 진행이 가능한 환경을 갖추었다. 올 잉글랜드 클럽은 2009년 5월 17일에 개폐식 지붕 설치를 기념하는 축하행사인 A Centre Court Celebration을 개최하였으며, 이 행사에서는 안드레 애거시와 슈테피 그라프, 킴 클리스터스. 팀 헨만의 초청 경기가 함께 열렸다. 정식 대회에서 새로운 지붕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이 해 윔블던 여자 단식 4회전 디나라 사피나와 아멜리 모레스모의 경기 도중에 시작된 비로 인해 지붕을 닫고 경기를 속행한 것이었다. 전체 경기가 지붕을 닫고 진행된 최초의 경기는 2009년 6월 29일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앤디 머레이와 스타니슬라스 바브링카의 경기였다. 한편 윔블던에서 하루 중 가장 늦게 종료된 경기는 2010년 대회 남자 단식 1회전 노박 조코비치와 올리비에 로쿠스의 경기로, 이 경기는 오후 10시 58분에 조코비치의 승리로 끝났다.[7]
2009년에는 2번 코트를 위한 4000석의 새로운 좌석이 옛 13번 코트 자리에 설치되었다. 2010년 9월 현재 3번 코트를 위한 2000석의 새로운 좌석의 설치가 옛 2번 코트와 3번 코트 자리에서 진행 중이다.[8]
경기 구성
윔블던은 5개의 메인 경기 부문과 4개 주니어 경기, 그리고 4개 초청 경기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9]
메인 경기
5개 메인 경기의 구성 및 참가 인원(팀)은 다음과 같다.
남자 단식 (128 드로)
여자 단식 (128 드로)
남자 복식 (64 드로)
여자 복식 (64 드로)
혼합 복식 (48 드로)
주니어 경기
주니어 경기는 칠드런스 윔블던(Children's Wimbledon)이라는 명칭을 줄여 ‘침블던’(Chimbledon)이라는 약칭으로도 부른다. 구성 및 참가 인원(팀)은 다음과 같다. 주니어 경기에 혼합 복식은 없다.
남자 단식 및 남자 복식 경기는 5세트 3선승제이며, 그 외의 경기는 모두 3세트 2선승제로 진행된다. 게임 스코어가 6-6으로 동률을 이루면 타이브레이크를 적용한다. 단, 각 경기의 마지막 세트(5세트 경기의 경우 5번째 세트, 3세트 경기의 경우 3번째 세트)에서는 한 선수가 2게임 리드를 먼저 따낼 때까지 타이브레이크 없이 게임을 계속 진행한다.
모든 경기는 싱글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어 경기의 패자는 토너먼트에서 바로 탈락하게 된다. 단, 남자 시니어 초청 복식, 시니어 남자 초청 복식, 여자 초청 복식 경기는 라운드 로빈 방식으로 진행된다.
1922년 대회 이전까지는 대회 우승자가 이듬해 대회 결승에 자동으로 진출하고(여자 복식 및 혼합 복식은 제외) 새로운 결승 진출자가 이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이 시기에는 한 선수가 여러 해에 걸쳐 연속으로 우승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1922년 대회부터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트로피 및 상금
남자 단식 우승자는 높이 18.5인치(약 47 cm)에 지름 7.5인치(약 19 cm)의 은도금 된 우승컵을 수여 받는다. 이 우승컵은 1887년부터 사용되었으며 표면에는 “All England Lawn Tennis Club Single Handed Championship of the World”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여자 단식 우승자는 비너스 로즈워터 디시 혹은 로즈워터 디시라 불리는 순은쟁반을 수여 받는다. 이 쟁반의 지름은 18.75인치(약 48 cm)이며 신화와 관련된 무늬들로 장식되어 있다. 남자 복식 및 여자 복식, 혼합 복식 우승자들은 은 우승컵을 수여 받는다. 각 경기의 준우승자들은 모두 무늬가 새겨진 은쟁반을 수여 받는다. 모든 트로피들은 대부분 올 잉글랜드 클럽의 회장에 의해 수여된다.
대회 참가선수들에게 상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것은 프로 선수들에게 문호가 개방되었던 1968년부터이다.[13]
2007년 이전까지 윔블던을 포함한 다른 대부분의 대회들은 남자 선수들에게 여자 선수들보다 더 많은 상금을 지급해 왔다. 2007년 윔블던은 상금 정책을 변경하여 남녀 선수들간의 상금 차등을 없앴다.[14]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남자 선수들이 여자 선수들보다 더 많은 세트를 소화하므로, 시간당 지급되는 보수를 균등하게 책정한다는 의미에서 남자가 상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테니스 선수는 플레이한 경기 시간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는 직업이 아니므로, 상금 책정에 있어서 경기나 세트의 수 등을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15][16][17]
2009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1,250,000 파운드였으며 단식 우승자는 850,000 파운드의 우승 상금을 받았다. 이는 2008년 대회 우승 상금보다 13.3 퍼센트 증가한 액수였다.[18]
2010년 대회의 총상금액은 13,725,000 파운드로 증액되었으며, 단식 우승 상금은 백만 파운드였다.[19]
↑남자 본선 드로가 단식(Singles) 128강과 복식(Doubles) 64강으로 구성되며, 각각의 예선(Qualifying) 드로에 128명 및 16팀의 참가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
Clarey, Christopher (2008년 5월 7일). “Traditional Final: It's Nadal and Federer”. 《The New York Times》. 2008년 7월 17일에 확인함. Federer said[:] 'I love playing him, especially here at Wimbledon, the most prestigious tournament we have.'
↑(영어) Will Kaufman & Heidi Slettedahl Macpherson, 편집. (2005). 〈Tennis〉. 《Britain And The Americas》 1. ABC-CLIO. 958쪽. ISBN1851094318. this first tennis championship, which later evolved into the Wimbledon Tournament ... continues as the world's most prestigious ev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