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하계 올림픽(영어: 1976 Summer Olympics, The Games of the XXI Olympiad, 프랑스어: Jeux olympiques d'été de 1976)은 1976년7월 17일부터 8월 1일까지 캐나다퀘벡주몬트리올에서 개최된 제21회 하계 올림픽이다. 1970년 모스크바와 로스앤젤레스를 제치고 개최권을 획득하였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레슬링양정모)가 탄생하였고 또한 최초의 구기종목 첫 메달리스트이자 여성 메달리스트(여자 배구 대표팀)가 탄생했다.
1976년 초반에 뉴질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이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부르는 인종 차별 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하여 친선 럭비 경기를 진행하자 아프리카 국가들이 뉴질랜드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럭비가 당시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재할 권한이 없다며 뉴질랜드의 올림픽 참가를 허용하였다. 이에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IOC의 결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해당 대회를 보이콧하여 참가국이 지난 대회에 비해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 카메룬,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는 대회 초반에만 잠깐 참가했다가 보이콧에 동참하였다. 또한 가이아나, 말리, 스와질란드(현 에스와티니)는 개막식에는 참석했지만 나중에 보이콧에 동참하면서 기권했다. 보이콧에 동조하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는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뿐이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버마, 이라크, 가이아나, 스리랑카, 시리아도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도한 보이콧에 동참했다.
1970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정식 승인한 캐나다의 피에르 트뤼도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관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이유로 대만 선수단이 1976년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에서 중화민국이라는 국호, 국기, 국가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캐나다 정부의 조치가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한 규정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중화민국이 아닌 대만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대신에 중화민국의 국기, 국가 사용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대만 선수단의 대회 참가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대만은 캐나다 정부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대회 참가를 사실상 포기하였다. 한편 엘살바도르, 자이르(현 콩고 민주 공화국)는 재정 문제를 이유로 불참했다.
올림픽 성화가 그리스아테네에서 개최지로 전자적으로 전달된 대회였다. 아테네에서 실제 불꽃에서 전자 펄스를 이용해 오타와에 채화하였고 이 성화는 몬트리올로 주자에 의해 옮겨졌다. 개최 도중 성화가 비바람에 꺼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관리자가 담배 라이터로 다시 불을 붙었으나 조직위원회는 다시 이 성화를 끄고 보관해 두었던 예비 성화로 다시 점화하였다.
루마니아의 14세 체조 선수인 나디아 코마네치가 7개의 10점 만점 연기를 펼치면서 3관왕에 올랐으며, 소련의 체조 선수인 넬리 킴도 3관왕에 올랐다.
독일 출신의 펜싱 선수 토마스 바흐(현 IOC 위원장)가 펜싱 남자 플뢰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대한민국레슬링 국가대표 양정모 선수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처음으로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며, 또한, 여자 배구 대표팀은 최초의 구기종목 첫 메달리스트이자 여성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펜싱 경기에 출전한 소련의 한 선수가 상대방을 찌르지 못해도 찌른 것처럼 보이도록 장비를 조작했는데, 너무 심하게 조작한 나머지 그 선수의 칼이 상대방에게 가까이 가기도 전에 불이 들어왔다. 수상하게 여긴 심판들은 이 경기를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 선수의 조작이 들통나고야 말았으며, 그 선수는 올림픽이 끝나기도 전에 소련으로 추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