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馮敬, ? ~ ?)은 초한전쟁기의 군인이자 전한 전기의 관료이다. 진나라의 장군 풍무택(馮毋擇)[1]의 아들이며, 충직하고 용감하여 명성을 떨쳤다. 본래 서위나라의 장군으로 위표를 섬겼었다.[2]
행적
고제 3년(기원전 204년), 서위나라가 한나라의 공격을 받자, 서위나라의 기병 장군으로서 대장 백직(柏直)에 속해 한나라 군과 대치했다. 이 싸움은 서위나라가 져 나라가 망하기에 이르렀다.[2]
문제 때, 주발·장상여(張相如)와 함께 가의를 참소하였다. 문제는 본래 가의를 공경의 지위에 앉히려 하였으나, 풍경 등의 참소를 듣고 장사왕의 태부(太傅)로 좌천시켰다.
문제 6년(기원전 174년), 회남왕이 시기(柴奇)와 함께 반란을 꾀하다가 발각되었다. 결국 회남왕은 문초를 받았는데, 전객 풍경은 문초 후 승상장창·종정유일·정위하·비도적중위(備盜賊中尉) 복 등과 함께 문제에게 회남왕의 죄가 사형에 해당함을 아뢰었다. 문제는 회남왕을 다시 문초하게 하였으나 똑같은 결과가 나왔는데, 끝내 문제는 회남왕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봉국을 빼앗고 촉군으로 유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