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郞)이 되어 문제를 섬겼다. 어느 날 같은 숙소를 쓰던 낭이 집에 돌아갔는데, 실수로 같은 방을 쓰던 다른 낭의 금을 가져갔다. 금의 주인은 직불의를 의심하였는데, 직불의는 사과하며 금을 사다 주었다. 그 뒤 금을 가져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돌려주니, 직불의를 의심한 낭은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곧 문제는 직불의를 발탁하였고, 직불의는 관직이 태중대부에 이르렀다. 어느 날 조정에서 어떤 이가 직불의를 문제에게 참소하였다.
“
직불의는 용모가 뛰어나긴 하지만, 형수와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
본래 직불의에게는 형이 없었으나, 직불의는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오왕과 초왕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오초칠국의 난), 직불의는 이천석의 신분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이를 물리쳤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 어사대부가 되었고 오초칠국의 난 때 세운 공을 인정받아 새후(塞侯)에 봉해져 식읍 1,046호를 받았다.
건원 원년(기원전 140년), 무제가 즉위하였다. 직불의는 죄를 지어 승상위관과 함께 면직되었고, 2년 후 죽었다. 시호를 신(信)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직상여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