믈라디치는 1942년 3월 12일, 독일,이탈리아의 괴뢰국이였던 크로아티아 독립국 보자노비치 (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보자노비치)에서 태어났다. 믈라디치의 아버지는 유고슬라비아 빨치산의 리더였으나, 우스타샤와 싸우던 중 전사했다.[1] 1961년 군사공업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갔고, 1965년 유고슬라비아 군에 입대하며 본격적으로 장교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발발 이후
믈라디치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던 해에 믈라디치는 크로아티아 크닌으로 발령을 갔다. 믈라디치는 크닌에서 유고슬라비아 제9군단을 지휘하며 좋은 성과를 보여, 다음 해에 사라예보에 있는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제2군관구의 사령관이 되었다.[1]
믈라디치에 대해선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의 제61조에 의해 국제 영장이 나와 있으며, 미국은 믈라디치와 라도반 카라지치의 체포에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세르비아 정부는 2007년10월 11일에 믈라디치의 체포에 연결되는 정보에 대해 100만 유로의 현상금을 건다고 발표하였다. 다른 전범인 라도반 카라지치는 2008년7월에 체포돼 헤이그에 보내졌지만, 믈라디치의 행방은 이후에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3]
2011년 5월 26일, 세르비아 경찰에 의해 세르비아 북동부의 작은 마을 라자레보에 있는 친척의 집에 숨어있는 믈라디치를 발견, 끝내 체포했다.[4] 그리고 당일, 보리스 타디치 대통령의 발표에 따라 체포가 확인되었다.[5]
2017년,네덜란드 헤이그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이루어진 재판에서 전쟁범죄와 인권 유린,학살등 10개의 혐의가 인정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를 진행했다.[6][7] 하지만, 국제형사재판소 최종심에서도 재판관 5명 중 4명이 찬성하며 하급 법원의 판결을 유지하고 항소를 기각하며 종신형이 확정되었다.[8][9][1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