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산스크리트어: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바즈라체디카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 영어: Diamond Sūtra)은 대한민국의 대표 불교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의 근본경전(소의 경전)이다.[1] 줄여서 금강경 또는 금강반야경이라고도 부른다.
대승불교의 모태가 되는 경전은 총 600권 분량의 반야경인데, 반야경의 앞부분 내용은 금강경이 되고, 뒷부분 내용은 반야심경이 되었다.[2]
402년 중국에서 활동한 쿠차왕국의 왕자 출신 승려인 쿠마라지바(구마라습)에 의해 한자로 번역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차례 번역되었으나, 현재 유행하는 금강경은 구마라습본이다.
금강경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시대로 추정한다. 금강경의 주석서인 『금강경오가해』가 당나라와 송나라 대에 여러 사람이 지었고, 이것이 전래가 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18]
조선시대
금강경 최초의 한글 번역이 이루어졌다. 그 예는 조선 세종 때 시작해 성종 대에 완성된 『금강경삼가해』이다. 또한 조선 세조는 한계희, 노사신 등에게 금강경을 번역해 『금강경언해』와 『금강경육조언해』를 만들게 했다.[19]
일제강점기 이후
1924년 용성 스님이 근대적으로 금강경을 번역하여 『상역과해금강경』이란 책을 지었다.[20]
동아시아
402년 구마라습이 금강경을 번역하면서, 동아시아에 급속히 확산이 된다. 이후 보리류지, 진체, 달마급다, 현장, 의정 스님 등에 의해 다양하게 번역이 이루어졌다. 선종 계통에서 소의경전이 되면서, 동아시아 최고의 경전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21]
세계
서기 150년 전후에 금강경이 성립되었다. 일찍부터 인도의 아상가나 바수반두 등이 해설서를 썼다. 이후 금강경의 산스크리트어 사본이 중국, 티베트, 일본 등에 전해졌다. 현재는 영어, 불어, 독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돼 전 세계에 보급되어 있다.[22]
대한민국의 국가유산
대한민국에서는 금강경이 국보 3점, 보물 10점 지정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국보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 - 금강반야바라밀경이 국보 제206-5호, 6호, 20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의 보물
고려공민왕 시기에 두루마리 형태로 제작된 금강경이 대한민국의 보물 제696호[23], 877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고려 우왕 시기에 목판을 새기고 조선초에 간행간 금강경이 제721호, 919호, 1172호이고, 고려 충숙왕대에 간행된 두루마리 금강경이 제775호이며, 고려 충렬왕대에 간행된 두루마리 금강경이 제1408호, 조선 태종대에 간행된 책 형태의 금강경이 제1082호, 1223호이다.
이 책은 목판본으로 구마라즙(鳩摩羅什)이 번역한 금강경을 바탕으로 육조 혜능(六祖 慧能)이 금강 경에 대해 해석한 내용을 붙인 것으로 1305년(고려 충렬왕 31)에 청주 원흥사에서 육구거사 박지요 (六具居士 朴知遙) 등이 발원하여 판각한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에 간행된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편성과정을 밝히는 교량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서지학 및 인쇄문화사 연구자료로 높이 평가된다.
종로도서관 소장본
송나라 야보(冶父) 천로(川老)의 주해(註解)와 송(頌)이 실린 책으로 주해한 인물의 법명에 따라 『천로금강경』으로 이름 붙인 책이다. 고려 우왕 13년(1387)에 간행한 판본과 거의 동일한 판식과 판각의 상태를 보이고 있어서 최소한 15세기 전기 이전에 판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종로도서관 고문헌 검색시스템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다.[24]
각주
↑“소의경전”. 《대한불교조계종》. 대한불교조계종. 2023년 5월 15일에 확인함. 소의경전이란 종단의 근본경전을 말한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전등법어(傳燈法語)』이다.
↑법상 스님, 법상 스님 (2021년 11월 25일). “[반야심경 마음공부 2] 반야심경의 불교사상사적 위치”. 《목탁소리》. 목탁소리 상주 대원정사. 2023년 5월 15일에 확인함. 『금강경』은 『반야경』의 앞부분에 속해 있으며, 『반야심경』은 뒷부분에 들어 있습니다. 이 두 경전은 600 권이나 되는 『반야경』의 핵심만을 간추려 요약한 경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반야심경』은 260자 (字)라는 짧은 글로 『반야경』의 사상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소의경”. 《대한불교 조계종》. 대한불교 조계종. 2023년 5월 17일에 확인함. 소의경전이란 종단의 근본경전을 말한다.
↑류, 동학 (2019년 6월 17일). “[류동학의 인문명리] 육조 혜능의 남종선과 한국 조계종”. 《경북일보》. 경북일보. 2023년 5월 17일에 확인함. 한국 조계종은 임제 의현이 개창한 임제종(臨濟宗)의 양기파 즉, 혜능-남악 회양-마조 도일--백장 회해-황벽 희운-임제 의현-석상 초원-양기 방회-원오 극근-석옥 청공의 중국 선불교를 한국의 태고 보우-청허 휴정(서산)-편양 언기-경허 성우(근대 불교 중흥조)로 이어져 왔다.
↑박, 희승 (2015년 8월 10일). “〈27〉■ 선과 금강경, 그리고 혜능대사(上)”.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5월 15일에 확인함. 이렇게 하여 무식한 나무꾼 혜능은 행자의 신분으로 <금강경>을 듣고 깨달아 6대 조사가 됐다.
↑박, 희승 (2015년 8월 10일). “〈27〉■ 선과 금강경, 그리고 혜능대사(上)”.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5월 15일에 확인함.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인 혜능은 주로 광둥성의 사오관시의 남화선사에서 36년간 주석했다. 이 남화선사의 뒷산이 조계산, 냇물 이름도 조계, 남화선사의 정문도 조계문이다.
↑박, 희승 (2015년 8월 10일). “〈27〉■ 선과 금강경, 그리고 혜능대사(上)”.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5월 15일에 확인함. 우리나라의 조계종(曹溪宗)이나 조계사 및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도 여기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허, 균 (2006년 3월 11일). “<60> 금강저”.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5월 18일에 확인함. 인도의 고대 전설에 의하면, 우주 최고의 신 인드라(Indra) 신의 무기가 천둥 번개이고, 인드라는 이 무기의 힘으로 적과 악의 화신들을 수없이 죽였다. 이 강력한 천둥 번개 무기가 바로 바즈라인데,
↑“금강저 (金剛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년 5월 15일에 확인함. 저(杵)는 인도 고대의 무기 가운데 하나이다. 제석천이 아수라주1와 싸울 때 코끼리를 타고 금강저를 무기로 삼아 아수라의 무리를 쳐부순다고 한 신화에서 그 신비한 힘이 유래되었다.
↑법상스님, 법상스님 (2021년 11월 1일). “글모음-법상스님 경전강의 [금강경 실천강의] 20강 - 제11분 무위복승분”. 《목탁소리》. 목탁소리 본찰 상주 대원정사. 2023년 12월 17일에 확인함. “수보리야, 항하에 있는 모래 수만큼 많은 항하가 있다면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모든 항하의 모래가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항하의 수만 하여도 셀 수 없이 많겠거늘 하물며 그 모래이겠습니까” “수보리야, 내가 이제 진실한 말로 너에게 이르노니, 만약 어떤 선남자 선녀인이 칠보로써 저 항하강 모래 수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워서 보시한다면 그가 얻는 복덕이 많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선남자 선녀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하나만이라도 받아 지녀 남을 위해 설해 준다면 이 복덕이 앞에서 말한 복덕보다 더 뛰어나리라.”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2017년 6월 23일). “[다시 보는 금강경] <24> 제16 능정업장분(能淨業障分)”. 《불교신문》. 불교신문. 2023년 12월 17일에 확인함. <금강경>을 독송하면 업장(業障)이 소멸된다는 말은 <금강경>을 통해 부처님의 말씀을 만나고(듣고)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면 지혜로워져서 업으로부터 해탈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재형 (2009년 6월 9일). “금강경 유통의 역사”. 《법보신문》. ㈜법보신문사. 2023년 5월 17일에 확인함. 금강경이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시대로 추정된다. 이후 금강경은 많은 영향을 주었고 특히 『금강경오가해』가 한국불교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는 게 한결같은 견해다.
↑이, 재형 (2009년 6월 9일). “금강경 유통의 역사”. 《법보신문》. ㈜법보신문사. 2023년 5월 17일에 확인함.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번역은 조선 세종 때 시작해 성종 대에 완성된 『금강경삼가해』를 꼽을 수 있으며, 세조 때 한계희, 노사신 등이 왕명을 받고 번역한 『금강경언해』와 『금강경육조언해』 등도 있다.
↑이, 재형 (2009년 6월 9일). “금강경 유통의 역사”. 《법보신문》. ㈜법보신문사. 2023년 5월 17일에 확인함. 이후 한글로 번역된 금강경이 역사에서 다시 등장한 것은 1924년 용성 스님의 『상역과해금강경』으로 근대적 금강경 번역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이어 신소천 스님을 비롯해 권상로, 해안, 청담, 탄허, 광덕, 월운, 무비, 진오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선지식들이 금강경에 대한 해설서를 잇따라 썼다
↑이, 재형 (2009년 6월 9일). “금강경 유통의 역사”. 《법보신문》. ㈜법보신문사. 2023년 5월 17일에 확인함. 동아시아에 금강경이 확산된 것은 402년 구마라집이 이를 번역하면서부터다. 이후 보리류지, 진체, 달마급다, 현장, 의정 스님 등에 의해 다양한 번역이 이뤄지고, 특히 선종에서 소의경전으로 간주되면서 금강경은 동아시아 최고의 경전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이, 재형 (2009년 6월 9일). “금강경 유통의 역사”. 《법보신문》. ㈜법보신문사. 2023년 5월 17일에 확인함. 서기 150년 전후에 성립된 금강경은 그 원명의 뜻처럼 금강석과 같은 단단하고 완벽한 반야의 지혜로 모든 이원(二元)의 분별과 집착을 끊고 피안에 도달하는 경전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런 까닭에 금강경은 일찍이 인도의 아상가나 바수반두 등이 해설서를 쓰기도 했으며, 이후 금강경의 범어 원전 사본은 중국, 티베트, 일본 등에 전해졌다. 또 지금은 영어, 불어, 독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돼 세계인들이 금강경을 읽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