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제의 본업은 목수였으며[13] 세미프로축구 선수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점점 실력을 인정받아 결국 2002년 FIFA 월드컵을 앞둔 상황에서 루디 푈러에게 전격 발탁되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었다. 부업으로 하던 축구선수 생활은 이 때부터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으며 특히 2002년 월드컵을 기준으로 쇠퇴해가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독일의 월드컵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클로제와 그의 아내 실비아 사이에는 쌍둥이 아들인 루안과 노아가 있다.[14][15] 2007년, 슈피겔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의 아내가 아이들에게 집에서 폴란드어로 대화를 하며,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웠다고 말하였다.[16]
그의 프로 경력은 20세에 전 분데스리가 클럽인 홈부르크의 리저브팀에 입단하면서 시작되었다. 12개월 후, 그는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하였다.
베르더 브레멘
2004년 3월, 클로제는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 베르더 브레멘과 €5M ($6.2M)의 가격에 4년 계약을 체결하였다.[18][19] 2004년 8월 6일, 그는 1-0으로 이긴 샬케 04와의 홈경기에서 파라과이의 공격수인 넬손 발데스와 교체 투입되어 첫 리그 경기를 치르었다.[20][21] 2004년 8월 29일, 클로제는 볼프스부르크전에서 1호골이자 팀의 동점골을 득점하였으나, 브레멘은 홈에서 1-2 패배를 당하였다.[22][23]
2007년 6월 7일, 클로제는 2007-08 시즌 시작 전이나 베르더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2007-08 시즌 끝에 베르더 브레멘을 떠나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할 것임을 확인시켰다.[24]
바이에른 뮌헨
2007년 6월 26일, 칼-하인츠 루메니게 회장은 바이에른 뮌헨이 베르더 브레멘과 선수 이적에 대한 협상이 완료되었다고 확인시켰다. 클로제는 2007년 6월 28일에 바이에른의 의료검진을 마친 후 4년짜리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2011년 6월 7일, 계약 만료가 임박하였을 때, 클로제는 바이에른 뮌헨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고, 2010-11 시즌을 끝으로 클럽을 떠났다.[25]
라치오
2011–12 시즌
2011년 6월 9일, 클로제는 라치오와 3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UEFA 유로파리그 2011-12 플레이오프전에서 라치오 1호골을 득점하였고, 4번의 어시스트도 기록하였다. 라치오는 라보트니치키와의 그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6-0으로 승리하였고, 합계 점수 9-1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다.[26] 2011년 9월 9일, 그는 2-2로 비긴 밀란과의 리그 데뷔 경기에서 12분에 자신의 세리에 A 1호골을 득점하였고, 경기는 2-2로 종료되었다. 그가 클럽에 들어온지 몇달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에도아르도 레야 소속팀 감독은 그를 이미 주요 전력으로 고려되었다.[27] 2011년 10월 16일, 클로제는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의 93분에 득점하여 라치오의 2-1 승리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이 승리는 라치오 팬들이 나치의 표식과 슬로건을 사용하여 빛을 바랬다. 슬로건은 '클로제는 우리와 함께' (Klose Mit Uns) 로 읽혔다. 이는 클로제를 찬양하는 팬들이 의도한 것이다. 그러나, 나치가 '신은 우리와 함께'를 사용한 전례가 있었고, 라치오 팬의 표식의 SS는 히틀러의 SS와 같은 글씨체로 되어 있었다. 클로제는 '정치는 경기장에 들어서선 안된다'라고 덧붙이며 표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였다.[28][29][30]
2011년 12월 10일, 클로제는 레체와의 원정 경기에서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라치오의 3-2 승리를 견인하였다.[31]
2012–13 시즌
2012년 9월 2일, 클로제는 3-0으로 이긴 팔레르모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첫 세리에 A득점을 올렸다.[32] 9월 26일, 클로제는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우연히 손으로 득점하였으나, 주심이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클로제는 주심에게 이 정보를 전하며 골을 취소할 것을 부탁하였다. 이후 주심은 골 판정을 무효로 처리하는 것으로 번복하였다.[33]
12월 2일, 클로제는 2-1로 이긴 파르마와의 경기에서 시즌 9호골을 득점하였고, 라치오는 세리에 A 순위를 4위까지 끌어올렸다.[34] 2주 후인 12월 15일, 그는 2위에 랭크되어 있는 인테르나치오날레와의 경기에서 막판 1-0 결승골을 넣었고, 두 팀간의 승점차를 1점으로 좁혔다.[35] 2013년 5월 5일, 그는 볼로냐전에서 5골을 성공시킨 후, 68분에 루이 사아와 교체되어 나갔다.[36] 그는 1984-85 시즌 이래 세리에 A 한경기에서 5골을 넣은 첫 선수로 등재되었다.[37]
5월 26일, 라치오는 코파 이탈리아 결승전에서 지역 라이벌인 로마와의 첫 로마 더비 결승전에서 1-0으로 이기고 클럽 통산 6번째 컵 우승을 달성하였다.[38]
국가대표팀 경력
클로제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의 분데스리가 데뷔 시즌에 꾸준한 골잡이로써 주목을 받았다. 2001년 1월, 당시 폴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예지 엔겔은 독일로 클로제를 찾아가 폴란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할 것을 설득하였다. 이 제의는 클로제가 "저는 독일 여권을 소유하고 있고, 흐름이 이 방향으로 넘어간다면, 저는 루디 푈러의 팀에서 활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거절되었다. 클로제의 의지는 정해졌고, 그는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할 것으로 정해졌다.[39]
2008년 6월 9일, 프르제글롱드 스포르토비 (Przegląd Sportowy) 와의 인터뷰에서, 클로제는 폴란드가 아닌 독일 국가대표로 활약할 것을 결정한 것은 쉽지 않았으며, 폴란드 협회쪽이 더 빨리 움직였다면, 그는 폴란드 국가대표로 활약했을 것이라 말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는 독일 국가대표로 월드컵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으로 인해 이 결정에 후회가 없다고 덧붙였다.[40]
2002년 FIFA 월드컵
2001년 3월 24일, 클로제는 알바니아와의 2002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경기에서 73분에 루디 푈러에 의해 교체 투입되며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였다. 출전 2분만에, 그는 독일의 2-1 결승골을 뽑아내었고, 이 골을 공중제비뜨기로 자축하였다.[41] 나흘 후, 클로제는 그리스와의 2002년 FIFA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경기에서 두번째 경기를 출전하였는데, 그는 67분에 벤치에서 나와 82분에 또다시 결승골을 득점하였고, 33분만에 2번의 알짜배기 득점을 성공시켰고, 독일은 잠시 예선 9조 선두를 달렸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이스라엘전과 오스트리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성공한 두 차례의 해트트릭으로, 그는 대회 본선에서 독일의 본선 라인업에 무난히 포함되었다.[42] 클로제는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열린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독일 국가대표로 5번의 헤딩골을 성공시키고, 히바우두와 함께 득점 공동 2위로 대회를 마감하면서 월드클래스로 발돋움하였다. 그는 FIFA 월드컵에서 최초로 5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고, 이 중 2골은 득점후 트레이드마크인 공중제비뜨기 골 세레머니를 하였으며, 그에 따라 "살토-클로제" (Salto-Klose, Salto는 독일어로 공중제비를 뜻한다.) 라는 별명이 붙었다.[43] 그의 이 대회 득점기록으로는 독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대파한 경기에서의 해트트릭과 아일랜드전, 카메룬전에서의 각각 1골씩이 포함되어 있었다.[44]
UEFA 유로 2004
클로제는 UEFA 유로 2004에 참가하여 라트비아와 체코와의 경기에 출전하였으나, 당시 그는 무릎 부상으로부터 완전히 회복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무득점으로 침묵하였고, 독일은 1라운드 조기 탈락의 수모를 당하였다.[45]
2006년 FIFA 월드컵
독일에서 열린 2006년 FIFA 월드컵에서의 개막전에, 클로제는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2득점을 올려 4-2 승리에 공을 세웠고,[46]에콰도르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도 비슷하게 멀티골을 넣어 3-0 승리를 견인하며 독일의 조1위를 이끌었다.[47]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80분, 그는 헤딩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독일은 이어지는 승부차기 끝에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였다.[48] 총 5골로, 그는 대회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49]
UEFA 유로 2008
본선에서, 클로제는 폴란드와의 조별 리그 첫 경기에 출전하여 루카스 포돌스키의 두 골을 어시스트하며 2-0 승리에 일조하였다. 그는 이어지는 크로아티아와 오스트리아와의 나머지 조별 리그 경기에도 출전하였으나, 골사냥에는 실패하였다. 그는 토너먼트전 첫 경기인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골을 넣으며 이 대회에서도 득점에 성공하였고, 이어지는 터키와의 경기에서도 골을 넣었다. 두 차례의 경기에서, 그는 독일의 경기 두 번째 골을 넣었고, 두 경기 모두 3-2 승리로 끝났다. 그는 그러나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득점하지 못하였고, 결국 독일은 0-1로 패하였다.[50][51]
2010년 FIFA 월드컵
클로제는 독일의 최종 23인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이번은 그의 3번째 FIFA 월드컵 참가였다. 6월 13일, 클로제는 오스트레일리아와의 1차전 경기에서 팀의 2번째 득점을 성공시켰고, 경기는 4-0으로 끝났다. 이 골로 그는 전 국가대표팀 감독인 위어겐 클린스만과 월드컵 통산 득점에 동률을 이루었다.[52]
2010년 6월 27일, 그는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 선제골이자 그의 12호 월드컵 득점을 성공시켰고, 펠레와 역대 월드컵 최다 득점 공동 4위에 이름을 올렸고, 99번째 출장한 경기에서 50번째 국제경기 골을 성공시키며 독일의 4-1 승리를 도왔다.[53]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 클로제는 100번째 국제 경기 출전을 기록한 6번째 독일 선수가 되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팀의 2번째, 4번째 골을 뽑아내었고, (독일이 4-0으로 승리) 게르트 뮐러와 월드컵 통산 득점 기록의 동률을 이루었다.[54]
UEFA 유로 2012
UEFA 유로 2012 예선전에서, 클로제는 그가 출전한 경기에서 최소 한골은 득점하였고, 독일의 모든 예선 상대에게 득점을 성공시켰다: 벨기에, 아제르바이잔, 터키, 카자흐스탄, 그리고 오스트리아. 예선전에서 6경기를 출전하는데 그친 클로제는 9골 2어시스트를 득점하여, 8경기에 12골을 득점한 클라스얀 휜텔라르에 이어 이 시기동안 가장 골결정력이 높은 선수였다.[55] 예선전이 종료 후, 그는 독일 국가대표로 63골 21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게르트 뮐러와의 독일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을 5골 (클로제의 출전 시간은 뮐러의 약 두배 정도였다.)까지 줄였다.[56]
2014년 FIFA 월드컵
클로제는 2014년 FIFA 월드컵이 독일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며, 독일 국가대표로 한번 더 월드컵 우승을 도전할 의사를 밝혔다.[57][58][59]
2014년 6월 6일, 아르메니아와의 월드컵을 앞둔 독일의 최종 친선경기에서, 클로제는 자신의 69번째 국가대표팀 득점을 성공시켰고, 이로써 게르트 뮐러의 독일 국가대표 최다 득점기록이었던 68골의 벽을 허물었다.[60]
2014년 6월 21일, 가나와의 경기에서 기록과 동률을 이루는 월드컵 15호골을 득점하였고, 독일은 2-2 무승부를 거두었다.[61] 그와 기록에 동률을 이룬 선수는 브라질의 호나우두로, 그도 월드컵에서 총 15호골을 득점하였었다.[62] 이 골로 클로제는 4번의 다른 월드컵 대회에서 득점한 세번째 선수로 기록되었다. 2014년 7월 8일, 클로제는 브라질과의 준결승전 23분에 자신의 대회 2호골이자 월드컵 기록을 경신하는 16호골의 득점에 성공하였다. 이 골로 독일은 2-0으로 앞서나갔고, 독일은 월드컵 개최국 브라질을 상대로 7-1로 대파하였으며, 클로제는 호나우두의 종전 기록인 15골을 넘었다. 클로제는 2014년 FIFA 월드컵 우승을 끝으로 대회가 끝난 후인 2014년8월 11일 독일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2005년 4월 30일, 베르더 브레멘에서 활약할 당시, 클로제는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와의 경기에서 오심으로 얻은 페널티킥을 거절하였다. 그는 그의 대응에 대해 페어플레이 상을 받았다.[63]
2012년 9월 말, 클로제는 라치오와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손으로 득점하였다. 클로제는 이 사실을 주심에게 알렸고, 주심은 그의 득점을 취소시켰으며, 옐로카드를 면한 뒤 악수를 나누었다.[63][64]
플레이 스타일
헤딩슛에 매우 능하며 공중제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달리기 속도가 거의 육상선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빨라서 상대 수비수를 피해 도망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이 뛰어난 달리기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슛을 넣기 좋은 위치로 최대한 빨리 달려가서 슛을 쏘는 것이 특징이다.
↑Klose, Miroslav (2010년 11월 23일). “Ich habe bei null angefangen” (독일어). Der Spiegel."Als ich nach Deutschland kam, konnte ich nur "ja" und "danke" sagen. In der Schule war das natürlich ein Problem. An meinem ersten Tag sollte ich ein Diktat schreiben, aber ich habe ja nichts verstan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