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요가나(일본어: 万葉仮名)는 가나의 일종으로, 주로 고대 일본어를 표기하기 위해서 한자의 음을 빌려 쓴 문자이다. 「만엽집」(万葉集)의 표기에 만요가나가 사용된 연유로 이러한 이름이 되었다. 마가나(일본어: 真仮名), 가리지(일본어: 借字)라고도 한다. 가차 문자(假借文字)의 일종이다.
개요
해서를 쓰지 않고 행서로 표현한 한자의 한 글자 한 글자를 그 뜻에 관계 없이 한 음절의 표기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 만요가나의 가장 큰 특징이다. 만엽집을 일종의 정점으로 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고지키』나 『니혼쇼키』의 가요나 주석 등의 표기도 만엽집과 같다. 『고지키』에는 오음이, 『니혼쇼키』 α군에는 한음이 반영되어 있다.
에도 시대의 학자 슌토 쇼닌(春登上人)은 『만요요지카쿠』(万葉用字格, 1818년) 안에서, 만요가나를 오십음도 순으로 정리하여 '정음'(正音), 약음(略音), 정훈(正訓), 의훈(義訓), 약훈(略訓), 약훈(約訓), 차훈(借訓), 희서(戱書) 등으로 분류했다. 만요가나의 자체를 그 글자의 구성에 의해 분류하면, 『고지키』와 『니혼쇼키』, 『만요』를 통해 그 수는 973가지에 달한다.
종류
만요슈는 전체 문장이 한자로 쓰여 있고, 한문어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노래는 일본어 어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래는, 표의적으로 한자로 표현한 것이나, 표음적으로 한자를 표현한 것이나, 표의나 표음 두가지를 나타낸 것이나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등 사용 방법이 다양하다.
만요슈가 편찬될 무렵에는 아직 가나는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신라의 향찰이나 이두와 사실상 마찬가지로, 만요슈에서는 만요가나라고 불리는 독특한 표기법을 사용했다.
만요슈는 삼국 시대에서 사용했던 한자의 음훈의 사용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한자의 의미와는 관계없이 한자의 음훈 만을 차용해서 일본어로 표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만요 가나는 한자를 이용하면서도, 최초로 일본에서 최초로 문자로 쓰여진 글이자, 일본인을 위해서 문자로 정착된 첫 번째 책이다.
만요가나는, 나라 시대 말에 문자의 모양이 조금씩 바뀌었고 획이 적은 문자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헤이안 시대로 오면 그 경향이 계속 나타나면서, 경제적으로는 효율성있고 간략한 문자가 계속 쓰이게 되고, 문자 형태를 계속 간략화(草略)하거나 일부 문자를 생략(省画)해서 만들어졌다. 그렇게 해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창조되었다.
현재에도 일본에서 만요가나는 각 지역에서 사용되고, 지명에서는 거의 대부분 만요 지명에서 유래된 것이 많이 있다.
만요가나의 역사
만요슈나 니혼쇼키에 등장하는 표기의 원래 모습은 갖추어져 있어서 만요가나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었다. 쇼소인에 남겨진 문서나 목간 자료의 발굴 등에 의해 만요가나는 7세기 경에는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사용이 확인된 자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오사카시주오구의 나니와궁(難波宮) 터에서 발굴된 652년 이전의 목간이다.
“
皮留久佐乃皮斯米之刀斯
”
와카의 첫머리라고 볼 수 있는 11글자가 기록되어 있다.
헤이안 시대에는 만요가나를 기반으로 하여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만들어졌다. 히라가나(여자)가 등장하자, 그에 대한 구 만요가나는 남자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