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국제 협회(프랑스어: Association internationale du Congo)는 1879년 11월 17일 벨기에의 레오폴 2세가 콩고에서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설립한 협회이다.[1] 이 협정은 국제 아프리카 협회의 전선 조직의 일부였던 벨기에 상층콩고 연구 위원회를 대체했다.[2] 콩고 국제 협회의 목표는 콩고 분지의 통제권을 확립하고 그 경제적 자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3] 1885년 8월 1일, 레오폴 국왕의 콩고 행정원 부원장은 베를린 회담이 폐막된 지 4개월 반 만에 이 협회가 "콩고 독립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4][5][6]
소유 및 통제
콩고 상류 연구 위원회의 공식 주주는 네덜란드와 영국 사업가, 레오폴 2세를 대신해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벨기에 은행원이었다.[7] 위원회의 의장인 막시밀리앵 스트라우치 대령은 레오폴의 임명자였다. 1878년 콩고 기지를 건설하는 데 5년 계약을 맺은 헨리 모턴 스탠리는 그가 국제 아프리카 협회, 콩고 상류 연구 위원회, 레오폴 자신에서 일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스탠리의 유럽 직원 계약은[8] 그들의 일의 실체를 공개하는 것을 금지했다.[9]
1884년부터 1885년까지의 베를린 회담 또는 콩고 회의는 아프리카의 유럽 식민지화와 무역을 규제했다. 레오폴 2세는 회의에서 아프리카의 공동 무역이 모든 나라들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열강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이 회의의 일반법은 아프리카를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 사이에 분할하고 콩고 협회가 지배하는 영토를 사유 재산으로 확인하였으며, 이는 본질적으로 레오폴 2세의 소유가 되었다.[10]
1884년 4월 10일 미국 상원은 체스터 A. 아서 대통령에게 "AIC의 깃발을 연합 정부의 깃발과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을 승인했다.[11] 1884년 11월 8일, 독일은 콩고에 대한 협회의 주권을 인정하였다.[12]
↑Cornelis, S. (1991). “Stanley au service de Léopold II: La fondation de l'Etat Indépendant du Congo (1878-1885)”. 《In Cornelis, S. (Ed.), H.M. Stanley: Explorateur Au Service du Roi. Pp. 41-60. Tervuren: Royal Museum for Central Africa.》: 53–54.
↑Katzenellenbogen, S. (1996). 〈It didn't happen at Berlin: Politics, economics and ignorance in the setting of Africa's colonial boundaries.〉. Nugent, P.; Asiwaju, A. I. 《African Boundaries: Barriers, Conduits and Opportunities》. London: Pinter. 21–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