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분할(영어: Scramble for Africa, Partition of Africa, Conquest of Africa, 프랑스어: Partage de l'Afrique,독일어: Wettlauf um Afrika스페인어: Reparto de África, 이탈리아어: Spartizione dell'Africa)은 1880년대에서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던 1914년까지 유럽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아프리카가 몇몇 열강의 식민지로 분할된 사건을 말한다. 19세기 말 유럽의 열강들은 세계 각지에 대한 식민지 경쟁에 나섰으며 아프리카 역시 이러한 식민지 쟁탈전의 각축장이 되었다.[1]1884년에서 1885년에 걸쳐 열린 베를린 회의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아프리카 분할과 벨기에의 콩고에 대한 식민 침략을 정당화했다.[2]
대항해 시대 이후 아프리카의 서해안 항로를 따라 유럽인들이 건설한 여러 항구들을 중심으로 식민지화가 시작되었다. 아프리카 서해안에 붙여졌던 '상아해안', '황금해안', '노예해안' 등의 명칭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무엇을 가져갔는지를 잘 보여준다.[5]
18세기 무렵 유럽은 아프리카 내륙의 탐험에 열중하였고 19세기에 이르러 아프리카 전체의 지도 제작을 완료하였다. 당시의 유명한 탐험가로는 데이비드 리빙스턴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리빙스턴은 인도주의적 신념을 가진 탐험가였고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유럽인의 비인도적인 노예 사냥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유명한 일화인 실종된 리빙스턴 박사를 찾은 헨리 모턴 스탠리의 콩고 탐험의 경우와 같이 당시 탐험가들이 작성한 지도는 결국 유럽의 아프리카 침탈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6]
1830년대에 이미 프랑스가 알제리를 자국의 식민지로 만들었고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케이프 타운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반까지도 아프리카의 사하라 이남 지역은 유럽 제국주의가 지배하지 못한 곳이었다. 1873년에서 1896년까지 장기 불황이 지속되자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고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시키려 하였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