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이후 영국군과 미국군의 잉여 군수품을 판매하는 거래업자로 사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거래의 성과가 하향세로 접어들자 부동산 개발업자로 사업 영역을 바꾸어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리고 실러 호텔, 암스테르담 호텔, 아메리칸 호텔 등 여러 호텔을 소유했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외덴뷔르트의 많은 부동산 자산을 사들였다.
또한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AFC 아약스의 회장이던 야프 판 프라흐와의 친분으로 클럽의 재정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로 인해 당시 클럽은 카란사약스(Caransajax)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1977년 그가 소유한 도박장에서 브리지를 하고 나오던 도중 괴한들에게 납치되었으며,[1] 5일 뒤 1000만 휠던의 몸값을 지불하고는 풀려나면서 네덜란드 최초로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유명 인사가 되었다.[2]헤트 파롤 등 네덜란드의 일부 언론에서는 납치범들이 독일적군파 소속이며, 테러리스트인 크누트 폴케르츠의 석방을 요구했다고 전했으나, 납치범들은 끝내 체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