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파(赤軍派, 독일어: Rote Armee Fraktion; RAF 로테 아르메 프락치온; 에르아에프[*], 영어: Red Army Faction)는 서독의 극좌파 무장단체였다. 초기에는 바더-마인호프 집단(독일어: Baader-Meinhof-Gruppe 바더-마인호프 그루페[*])이라고도 했다. 안드레아스 바더, 구드룬 엔슬린, 호르스트 말러, 울리케 마인호프 등이 1970년에 결성했다. 독일의 68학생 운동의 혁명적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조직은 그들을 무장 투쟁 운동조직으로 소개했지만, 서독 정부는 적군파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그들은 우루과이의 투파마로스 등 남아메리카의 도시게릴라를 표방한 반제국주의, 공산주의 집단이었다.
민족사회주의(나치)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에도 독일에서는 근본적인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본주의 진영은 전후의 독일에 자본주의 체제를 재구축하고 서방 사회의 군사적, 경제적 블록에 독일을 편입시키는 것을 일차적 과제로 삼았다. 즉, 서방 자본주의 진영에게 독일(서독)은 공산주의와 볼셰비즘에 대한 방어벽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세계대전 직후 두 차례의 전범 재판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과 소련을 중심으로 힘을 키워가던 사회주의 세력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서방 자본주의 세력들은 이전의 나치주의자들을 관직에 등용하고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았다. 독일의 젊은 세대들은 아무런 반성없이 파시즘에 물들었던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되는 사실을 깨닫고 60년대에 들어서 새로운 주거 공동체(Wohngemeinschaft)와 학생 조직을 만들며 본격적인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이유로 베트남 국민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고 있었다. 네이팜탄으로 무장한 미군의 베트남 융단 폭격은 독일 전역 좌파들 사이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거부감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또한 학생운동 안에서는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운동과 그와 동시에 제 3세계 해방운동에 대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968년 2월 독일 사회주의 학생연맹(Sozialistischer Deutscher Studentenbund, SDS)은 베트남 전쟁에 관한 국제회의(국제 베트남 회의)를 개최하였고 회의 결과 '서유럽은 제국주의의 조용한 배후 국가로 남아있어서는 안되며 유럽 각 도시에서 제3세계 해방을 위해 제국주의와 투쟁하는 제 2의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 투쟁의 수단과 방법들은 각 나라의 대중의 조건과 의식에 따라 전개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운동이 점차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1967년 6월 2일 자국민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독재정권으로, 당시 독일과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였던 이란의 국가원수 부처가 베를린을 방문했다. 이란의 반민주적인 독재와 독일방문에 항의하는 반대시위 도중 베를린 자유대학 로만어과 학생 Benno Ohnesorg이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베를린 시 정부와 경찰의 발뺌하는 태도로 버티자 독일의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6월 2일 발생한 이 사건과 사후 정부의 대처와 태도로 인해 68 학생운동의 시작된 것이다. 이 사건이후 독일 68혁명 당시의 핵심조직 중 하나인 독일 사회주의 학생연맹(SDS)과 다른 학생운동 조직들에 대해 대학생들의 가입이 급증하였다. 1968년 4월 10일 독일의 우익 신문지 Axel Springer 사의 선동기사로 인해 자극받은 독일의 우익 화가가 SDS의 지도자인 루디 두취케(Rudi Dutschke)를 피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피격 사건이후 발생한 광범위한 장외 가두 투쟁(APO)이 학생운동과 노동조합의 완전한 연대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서 서서히 붕괴조짐이 보이자 다양한 조직들로 분열되어 나갔다. KBW 같은 공산주의 조직이나 현실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DKP 등이 대표적으로 분화된 조직들이다. 무기를 들고 불법적으로 투쟁하려는 그룹들이 독일의 적군파(RAF)를 조직하였고 적군파에는 도시 게릴라 연합체인 '7월 2일 운동' 과 '혁명세포(RZ)' 그리고 '붉은 분노(ROTEZORA)' 등이 속해 있었다.
1977년 독일의 가을이라는 뉴 저먼 시네마 감독들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가 있다. 또한 2008년 바더 마인호프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이 외에도 이 단체의 활동에 대한 수십 편의 독일 영화들이 있다 (독일어 위키백과 사이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