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치국(일본어: 常陸国)는 고대 일본의 지방행정구분이었던 영제국(令制國)의 하나로, 도카이도(東海道)에 속해 있던 옛 구니의 하나다. 지금의 일본 간토 지방 동북부 이바라키현(茨城県)에 해당한다. 조슈(일본어: 常州)라고도 한다.
가즈사국(上総國) ・ 고즈케국(上野國)과 함께, 친왕(親王)이 고쿠시(國司)로서 부임하는 친왕임국(親王任國)이었고, 친왕은 대부분 교토 밖으로는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고쿠후(國府)의 실질적인 장관은 히타치노스케(常陸介)였다.
히타치 국의 성립에 대해서는 《히타치 국 풍토기(常陸國風土記)》에 따르면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이 이루어진 645년 직후라고 서술하고 있으나, 임신의 난(672년)에서 공을 세운 오토모노 후케이(大伴吹負)가 후세의 히타치노카미(常陸守)와 같은 「상도두(常道頭)」(「히타치常陸」가 아니다)에 임명되었다는 기술이 있는 것으로 보아, '히타치(常陸)'라는 호칭은 7세기 말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히타치 국 풍토기》 일문(逸文)의 시다군(信太郡)조에 「하쿠치(白雉) 4년(653년)에 모노노베노 가와치(物部河内) ・ 모노노베노 아이즈(物部会津) 등이 청하여 쓰쿠바(筑波) ・ 이바라키(茨城)의 고오리(郡) 700호를 나누어 시다군을 두었다. 이 땅은 원래 히타카미국(日高見國)이다."라고 하는 기술이 있어 영제국 성립 전에는 히타카미 국이었다고 되어 있다.
율령제가 반포되었던 초기의 히타치 국은 다가군(多珂郡)을 편입하여 지금의 이바라키 현의 대부분(서남부 제외)과 후쿠시마현(福島縣) 하마도리(浜通り)의 오쿠마(大熊)에 이르는 광대한 구니였다. 《히타치 국 풍토기》에는 "구지군(久慈郡)과 다가군의 경계인 스케 강(助川)을 도젠(道前)이라 하고, 무쓰 국(陸奧國)의 이와시로군(石城郡) 고마노무라(苦麻村)를 도후(道後)라 부른다."는 기술이 있는데, 스케 강은 지금의 히타치 시(日立市), 고마는 오쿠마에 해당한다. 즉 지금의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부근이 히타치와 무쓰의 경계였다는 것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지토 천황 원년(687년) 3월 을축(1일)에 고구려(보덕국)에서 귀화해 온 56인을 히타치 국에 살게 하면서 땅을 나누어 주고 곡식을 주었다는 기술이 있다.
훗날 무쓰국(陸奧國)이 설치되면서 히타치 국의 북단은 기쿠다군(菊多郡)에 이르렀고, 무쓰 국과의 경계는 지금의 유모토 역(湯本驛) 부근이었다. 나아가 요로(養老) 2년(718년), 기쿠다군이 새로 세워진 이와시로국(石城國)에 편입되고 히타치와 이와시로의 경계(지금의 히라카타平潟 터널 근처)에 기쿠다노타테(菊多関, 훗날의 나코소노타테勿来関)가 세워진다. 이때부터 히타치 국의 범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이, 지금의 이바라키 현 서남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바라키 현 지역을 아우르는 범위로 자리잡았다.
히타치 국은 니이하리군(新治郡), 쓰쿠바군(筑波郡), 시다군(信太郡), 이바라키군(茨城郡), 나메카타군(行方郡), 가시마군(香島郡, 훗날의 가시마군鹿島郡), 나카군(那珂郡), 구지군(久慈郡), 다가군(多珂郡, 훗날의 다가군多賀郡), 시라카베군(白壁郡, 훗날의 마카베군真壁郡), 가와치군(河内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인 덴죠(天長) 3년(826년) 9월 6일(양력 10월 10일), 히타치 국과 가즈사 국, 고즈케 국 이렇게 세 구니는 반드시 친왕을 카미로 부임하게 한 친왕임국(親王任國)이 되었고, 구니의 등급도 대국(大國)이 되었다. 친왕임국의 카미가 된 친왕은 '태수(太守)'라 칭하고, 관위도 필연적으로 다른 쿠니의 카미(통상 종6위하에서 종5위상)보다 높은 정4위 이상이었다. 이렇게 히타치의 태수로 임명된 친왕으로는 간무 천황(桓武天皇)의 제3황자 가즈라와라 친왕(葛原親王)이나 닌묘 천황의 제3황자였던 도키야스 친왕(時康親王)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 친왕 태수가 현지에 실제 부임하는 일은 없었으며(요임遙任) 히타치 국의 실질적인 '장관'은 카미 아래의 스케(介)가 맡았다.
율령제가 무너진 헤이안 시대 말기 이후, 장원의 분립이나군의 분할이 진행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실시된 태합검지(太閤檢地) 때에 세분화된군과 장을 재편성하여 고대군의 복원을 꾀했지만, 그 영역은 고대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메이지 정부에 의한 또 한 번의 재편을 거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까지 이어지는 이바라키현내의 군의 구분과 그 영역은, 이 태합검지 때에 재편된 것을 기초로 한다.
《와묘쇼(和名抄)》에 따르면 히타치 국의 고쿠후(國府)는 이바라키군에 있었다. 설치 시기는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다이카(大化) 2년(646년) 이후라고 하며, 후츄 성(府中城)터가 있는 지금의 이시오카 시립 이시오카 소학교를 고쿠후의 자취로 비정하고 현재 발굴이 진행 중인데, 고쿠분지(國分寺) 같은 옛 기와나 건물 흔적이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이것이 고쿠후의 일부인지는 확증을 얻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시오카 시내에 고쿠후가 위치해 있었을 가능성도 있으며, 가마쿠라 시대의 고문서에 「옛 고쿠후(古國府)」라는 문언이 나와있는 것으로 미루어 「지금의 고쿠후(現國府)」라 불린 곳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확실한 것은 없다.
군아(郡衙) 유적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그 위치가 비정되고 있다.
히타치 국에는 메이지 유신을 맞이했던 번(藩)으로 미토번(水戸藩)이 있었고, 그 미렌시(御連枝)로서 후츄 번(府中藩), 시시도 번(宍戸藩), 그리고 그에 딸린 가로(家老)였다가 메이지 이후에 독립한 마쓰오카 번(松岡藩), 그 밖에도 쓰치우라 번(土浦藩), 카사마 번(笠間藩), 시모타테 번(下館藩), 야타베 번(谷田部藩), 아소 번(麻生藩), 우시쿠 번(牛久藩), 시모쓰마 번(下妻藩)이 있다.
메이지 원년부터 폐번치현(廢藩置縣)까지의 기간 동안 번으로 세워진 것은 시즈키 번(志筑藩), 마쓰카와 번(松川藩), 류가사키 번(龍ヶ崎藩)이 있다.
히타치 국이 친왕임국이 된 이래로 히타치노스케는 히타치 국의 실질적인 장관이었고, 관위도 요로율령의 관위령에서 정한 대국(大國)의 스케와 같은 정6위하가 아니라 종5위 이상이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덧붙여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도 가공의 인물로 '히타치노스케'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