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공산주의 혁명가 수흐바타르의 동료였던 그는 수흐바타르가 병사하자 몽골 인민공화국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몽골 인민군의 근대화를 추진해 병력을 강화했다. 또한 중공업을 비롯한 산업을 발전시켰으며, 소련의 교육정책을 몽골에 도입해 문맹률이 크게 하락했다. 1937년부터 허를러깅 처이발상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내무인민위원회와 함께 소련과 몽골 그리고 코민테른에서 반스탈린주의자를 축출하는 대숙청을 주도, 감독했다. 1939년에는 할힌골에서 소련붉은 군대의 게오르기 주코프와 함께 만주 일대에 침공한 일본군을 격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의 소련의 대규모 원조를 받아 경제 및 산업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951년 허를러깅 처이발상은 지병인 신장암 치료를 위해 소련의 모스크바로 향했으며, 이듬해 증세가 악화되어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과 몽골 인민공화국에서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이오시프 스탈린과 라자리 카가노비치를 비롯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생전 동지이자 각별한 친구인 이오시프 스탈린이 직접 추도사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