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비와 대한제국의 황후(朝鮮의 王妃와 大韓帝國의 皇后)는 조선 시대 국왕이나 대한제국 황제의 정실 부인(正宮)으로서 중궁(中宮)의 자리에 있던 사람을 말한다. 흔히 중전(中殿, 중궁전의 준말)이라고 하며 이외에도 국모(國母), 내전(內殿), 곤전(坤殿), 곤위(壼位), 곤극(壼極), 성녀(聖女) 등의 여러 이칭[1]이 있다.
왕비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었는데, 일반적으로는 국가에서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고 간택 절차를 거쳐 세자빈에 책봉되면 훗날 세자인 남편이 왕위에 올라 자신도 왕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세자빈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왕비로 책봉된 이도 있었고,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왕자의 부인이었던 이가 남편이 왕위에 오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왕비가 된 경우가 있었다. 그 밖에도 원래의 왕비가 쫓겨나거나 사망하여 후궁이 왕비에 책봉된 예도 있다. 신분상으로는 숙종의 왕비였던 희빈 장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양반가의 출신이다.
왕비의 존칭은 왕과 동등하게 전하(殿下)이며, 품계는 없다. 침전은 경복궁의 경우 교태전(交泰殿), 창덕궁의 경우 대조전(大造殿)이다.
1894년(고종 31년) 갑오개혁 때 청나라에 대한 사대의 예를 폐지하고 왕실의 의례를 독립국의 격으로 격상하면서 왕비와 대비를 각각 왕후와 왕태후로 격상하고 그 존칭은 폐하(陛下)라 하였다[2]. 이어 1897년(고종 34년, 광무 원년) 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대군주가 황제로 격상되자 왕후 역시 황후로 격상되었다[3]. 그리고 1899년(고종 36년, 광무 3년)에 태조와 장조, 정조가, 1908년에 진종, 헌종, 철종 등의 왕들이 황제로 추존되면서 그 왕비들에게도 황후의 시호가 올려졌다[4].
역대 왕비
다음은 조선시대의 역대 왕비를 나열한 것이다.
역대 왕대비
다음은 조선의 왕대비를 나열한 것이다.
기타
- 신 안동 김씨(新 安東 金氏)는 조선의 삼왕후(三王后)를 배출하였다.
- 조선의 제10대 왕인 연산군(燕山君)은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씨(廢妃 尹氏)를 추존하여 시호를 제헌왕후(齊獻王后)라 하고 그 묘에 회릉(懷陵)의 능호를 붙인 적이 있다. 그러나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나 폐비의 시호는 삭탈, 회릉은 회묘(懷墓)로 강봉되어 원상복구됐다.
- 조선의 제15대 왕인 광해군(光海君)은 1610년(광해군 2년) 음력 3월 29일 자신의 생모인 공빈 김씨(恭嬪 金氏)를 추존하여 시호를 자숙단인공성왕후(慈淑端仁恭聖王后, 공성왕후)라 하고 그 묘에 성릉(成陵)의 능호를 붙인 적이 있다[5]. 그러나 인조 반정이 일어나면서 공빈의 왕후 시호는 모두 삭탈되면서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갔다[6].
같이 보기
출처
- ↑ 네이버 국어사전, 한자사전
- ↑ 《조선왕조실록》고종 31년(1894) 12월 17일 1번째 기사
- ↑ 《조선왕조실록》고종 34년(1897) 10월 12일 1번째 기사
- ↑ 《조선왕조실록》고종 36년(1899) 12월 7일 4번째 기사
- ↑ 《조선왕조실록》광해 2년(1610) 3월 29일 1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인조 1년(1623) 3월 18일 1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