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중신(任重臣, 1517년 3월 24일 ~ 1580년 8월 28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字)는 백강(伯强), 호는 영사재(永思齋)이고, 본관이 풍천(豊川)이다. 좌참찬 정헌공 임권의 아들이며, 공조판서 지중추부사 소간공 임유겸(任由謙)의 손자이다. 임보신과 임호신은 그의 사촌 형이 된다. 경기도 양주 출신.
양주군 회암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임권이고 어머니는 영산신씨로 진사 신제담의 딸이다. 음보(蔭補)로 관직에 올라 재랑(齋郞) 직을 역임했다. 이후 1543년(중종 38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다시 음서로 관직에 올라 금오랑(金吾郞)이 되었으며, 광흥창봉사, 종묘서봉사, 풍저창봉사와 광흥창직장, 종묘서직장, 풍저창직장, 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그리고 사축서사의(司畜司司畜), 장례원사의(掌隷院司儀), 사축서사의, 의빈부도사, 군자감첨정(軍資監僉正)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성주통판, 금천(衿川)·옥천(沃川)·영월(寧越)의 군수를 역임하였다. 1580년 8월 28일 병으로 사망하여 향년 64세이다.
시신은 경기도 양주군 회암면 율정리(후일의 양주군 회천읍 율정리) 선영 건너편 왼쪽 언덕, 아버지 임권 묘 아래, 먼저 죽은 본부인 전주이씨 묘소 왼쪽 위편에 안장되었다. 후일 그의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율정동 240-4번지에서 경기도 양주시 율정동 산2-62번지로 개정되었다. 묘비는 1617년(광해군 9년) 세워졌으며, 묘비문은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가 짓고 김현성(金玄成)이 글씨를 썼다.
임중신의 후손은 풍천 임씨 집성촌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들은 양주시, 포천시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