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심씨(三陟沈氏)는 강원도 삼척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삼척심씨세보(三陟沈氏世譜)》에 따르면 시조 심적충(沈迪冲)은 고려 문종조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림랑(文林郞)으로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심후(沈侯)가 좌승선(左丞宣)을 역임하였지만, 중간 세보가 실전되어 심동로(沈東老)를 1세조로 한다.
중시조 심동로(沈東老)가 1342년(충혜왕 2년) 문과에 급제하여 직한원사(直翰院事), 판예문검열(判藝文檢閱), 판수찬춘추관(判修撰春秋館), 판예문수찬(判藝文修撰), 판밀당직당후관(判密直堂後官), 봉선대부 중서사인 지제고(奉善大夫中書舍人知制誥), 예의판서(禮儀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그가 권신(權臣)들의 전횡을 보다 못해 벼슬을 버리고 삼척부(三陟府)로 물러나자 공민왕이 이를 만류하며 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의 동로(東老)라는 이름을 하사하였고,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였다. 초명은 심한(沈漢)이었다. 그는 해암정(海岩亭)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면서 노년을 보냈다.
삼척 심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1] 7세손 심준(沈濬, 1453∼1495)이 1489년(성종 20년)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정랑과 예문관 제학 등을 지냈고, 슬하에 언경(彦慶), 언량(彦良), 언광(彦光) 등 세 아들을 두었다. 심언경은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고, 심언광은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다.
심동로의 아들인 심공무(沈公懋)는 서운관부정(書雲觀副正)을 지냈고, 슬하에 일곱 아들을 두었다. 첫째 아들은 현감(縣監) 심원복(沈原福), 둘째 아들은 학사(學士) 심원충(沈原忠), 셋째 아들은 첨절제사 심원달(沈原達), 넷째 아들은 검교 한성윤(檢校漢城尹) 심원련(沈原連), 다섯째 아들은 호장(戶長) 심원린(沈原麟), 여섯째 아들은 별장(別將) 심원룡(沈原龍), 일곱째 아들은 사인(士人) 심원립(沈原立)이다.
삼척(三陟)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일원의 지명이다. 진한의 실직국(悉直國)이 102년(신라 파사왕 23) 신라에 합병되어 만약(滿若) 또는 파리(波利)로 불렸다.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悉直州)라 하였고, 639년(진덕여왕 8) 진주(眞珠)로 고쳤다가 757년(경덕왕 16)에는 삼척군으로 개칭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 : 江陵) 관하에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척주(陟州)라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는 삼척현으로 강등되어 동계(東界)에 속하였다가 1377년(우왕 3)에 다시 삼척군으로 승격되었다. 1393년(태조 2) 삼척부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 13)에는 삼척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896년 강원도 삼척군이 되었고, 1986년 삼척시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