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안공주(明安公主, 1665년 6월 30일 (음력 5월 18일)[1] ~ 1687년 6월 25일(음력 5월 16일))는 조선의 왕족으로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3녀이다. 이름은 온희(溫姬)이다.
1665년(현종 6년) 5월 18일, 현종(顯宗)과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1671년(현종 12년) 12월 21일, 명안공주(明安公主)에 봉해졌다.[2]
1679년(숙종 5년) 서인의 핵심 인물인 오두인의 아들 오태주(吳泰周)와 정혼하여 이듬해인 1680년(숙종 6년) 12월 18일 가례를 올렸다. 당시 가뭄이 극심하였는데 명안공주의 살림집을 성대하게 지어 송시열 등이 규모와 비용을 줄일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3]
1681년(숙종 7년), 명안공주 집안에서 충청도 덕산의 방죽과 전지를 불법으로 차지하여 송사가 일어났는데, 숙종은 이를 주민들에게 되돌려 줄것을 명하였다.[4]
1687년(숙종 13년) 5월 16일, 2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5]
명안공주의 시댁인 해창위(海昌尉) 오태주(吳泰周) 일가는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 당시 명안공주의 시아버지인 오두인이 인현왕후 폐위와 관련해 올린 상소 사건[6]으로 멸문지화를 입을 뻔하였으나 숙종의 여동생의 시가이기에 멸문의 화를 피할 수 있었고 삭탈되었던 오태주의 작위도 다음달에 특별히 복작되었다.[7] 오태주는 1716년에 졸하였다.
명안공주의 무덤은 경기도 안산시 사사동 산 48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