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고사》(檀奇古史)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아우 반안군왕(般安郡王) 대야발이 8세기경에 편찬했다고 주장되는 역사서이다. 1959년에 출간된 국한문본과 1990년에 복원된 한문초략본(백산본)이 확인되고 있다. 그 내용이 각 시대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점 등으로 인해 역사학자들은 20세기에 만들어진 위서로 평가한다.
‘단기고사(檀奇古史)’는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옛 역사’라는 의미로, ‘전단군조선(前檀君朝鮮)’과 ‘후단군조선(後檀君朝鮮)’으로 나뉜 47대 단군의 재위 기간과 각 시대의 주요 기록, 약 2천여 년에 걸친 역사와, 전단군조선보다 늦게 시작된 기자조선(箕子朝鮮)의 42대 1천여 년의 일을 시대순으로 기술하고 있다.[1]
1959년에 출간된 국한문본 《단기고사》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국한문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문초략본은 47대 1168년간으로 기록되어 《규원사화》와 비슷하다.)
단기고사에는 근대 용어의 등장이나 당시 시대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기록 등 여러 가지 심각한 모순으로 역사적인 자료로 인해 그 어떤 학계에서도 채택되지 않는다.
국한문본 《단기고사》에 기록된 10여 건의 천문 관련 기록의 실현 여부를 연구한 논문이 발표되었으나, 그 내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7] 논문의 내용과 반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구의 기준으로 쓰인 연대는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음을 가정한 것이며, 《환단고기》의 연대를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고사》의 연대로 같은 작업을 실행할 경우 200년 가까이 오차가 생기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오성취합은 20년에 한 번 일어나는 현상으로 1년의 오차를 생각한다면 1/6 정도의 아주 높은 확률이다.
단군조선을 47대의 왕조로서 기록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지나치게 긴 재위 연대에는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여 채택하지 않고 있다. 시대와 맞지 않는 내용, 근대 이후에 사용된 용어 등 많은 부분이 후대에 위조 가필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단기고사》 초략본(백산본)을 별도로 주목하였다. 기자조선(奇子朝鮮)의 기록과 나머지 기록들은 전부 받아들이지 않았고, 전조선·후조선의 시대 구분만을 채택하였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