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이평야(일본어: 福井平野 후쿠이헤이야[*])는 일본후쿠이현의 레이호쿠 지방에 펼쳐진 평야이다. 후쿠이현 내 최대 넓이의 평야로 면적이 현 전체 면적의 1/4, 거주 인구는 현 전체 인구의 60%가 거주하고 있다.[1]
원래는 내해였던 곳이었으나 구즈류강과 그 지류인 아스와강, 히노강의 퇴적 작용으로 만들어진 충적평야로 남북 길이 약 40 km, 동서 길이 약 10-15 km로 남북 길이가 훨씬 길다. 몬주산을 기준으로 남쪽을 사바타케분지, 구즈류강 북쪽을 사카이평야,[2][3]로 나누어 사바타케분지와 사카이평야 사이 중앙 지역을 좁은 의미에서 후쿠이평야라고 부르기도 한다.[4]
역사
역사적으로 후쿠이평야는 도다이지의 장원 지역이었던 곳이었다. 서기 479년경(덴표쇼호 원년)부터 도다이지가 방치된 야산을 점유하거나 11세기 이후 기진으로 간전 기진, 매입으로 이루어진 장원을 꾸려가며 후쿠이평야의 광범위한 지역을 사유지로 점유하였다. 그 결과 사찰령 토지로 에치젠국의 개발을 맡으며 더불어 후쿠이평야의 수확물을 구즈류강을 통해 운송하여 경제적으로 수익을 얻는 일종의 사찰이 지주가 되는 봉건제적 장원 형식 구조가 자리잡았다.[5] 에도 시대 이후에는 후쿠이번이 자리잡았으며 지속적으로 치수개발이 이루어져 레이호쿠 지방의 대규모 농사지대로 경지면적은 확대되었으나 구즈류강의 치수가 어려워 근대적인 후쿠이평야 대규모 농지개발은 1955년 나루카 제방 건설과 함께 사카이평야가 대규모로 경작이 시작되면서 자리잡게 되었다.[6]
태평양 전쟁이 종전한 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48년에는 후쿠이평야에 규모 M7.1의 후쿠이 지진이 발생하여 후쿠이평야 전 지역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7] 후쿠이현과 평야 지역을 괴멸시킨 대진재 중 하나로 꼽혔으나[8] 지진 이후 후쿠이시, 평야 재개발 및 부흥을 이루어내며 후쿠시마는 시민헌장으로 "불사조의 도시"로 선언하는 등 후쿠이평야는 급격한 발전을 이뤄냈다.[9][10]
지질
후쿠이평야에는 후쿠이 지진의 지진 단층인 북북서-남남동 방향(대략 10N°-20W° 방향[11])을 주향으로 하는 거대한 좌횡 주향이동단층이 존재한다.[12] 후쿠이평야의 두꺼운 충적층에 덮여 정확히 관측되진 않으나, 정밀 토지조사를 통해 후쿠이평야 동부의 지하인 사카이군 아와라정 북부에서 시작해서 가나즈정, 사카이정, 마루오카정, 마쓰오카정을 지나 후쿠이시 동남쪽 부근까지 드문드문 끊어진 선으로 이어지는[13] 길이 27 km의 "후쿠이 지진 단층"과 약 3 km 동쪽으로 평행하게 이어져 있는 길이 8 km의 "후쿠이 동쪽 지진 단층"이 존재한다고 추정된다.[14] 이를 통째로 묶어 2004년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의 지진조사위원회 평가에서는 후쿠이평야 동부에 후쿠이평야 동연 단층대(福井平野東縁断層帯) 단층이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