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러시아어: Карл Ива́нович Ве́бер, 독일어: Carl Friedrich Theodor von Waeber 카를 프리드리히 테오도어 폰 베버[*], 문화어: 칼 웨베르, 1841년6월 17일 ~ 1910년1월 8일)는 러시아 제국의 외교관으로 1885년부터 1897년까지 주(駐)조선 러시아 공사로 근무하였고, 고종의 개인적인 친구이기도 했다.
그는 을미사변의 주체를 흥선대원군이라며 진실을 은폐하고자 했던 일본에 항의하였으며, 고종에게 러시아 공사관을 피신처로 제공해 아관파천을 성공시켰다. 곧 이어 이완용을 필두로한 친러 내각을 조직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1895년 7월 러시아는 일본을 의식하여 베베르를 멕시코 주재 공사로 전보키로 하고 후임에는 시페이예르로 교체하기로 결정하였는데, 고종은 이 소식을 듣고 베베르를 유임시켜 달라고 편지를 써 강한 신뢰를 나타내었다. 후임인 시페이예르가 부임하기 위하여 한성에 도착했으나 주일 러시아 공사가 공석이 되어 러시아 외무성은 돌연 시페이예르를 도쿄 주재로 파견하였고, 베베르는 한성에 남게 되었다. 그는 2년간 더 서울에 머무르다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갔고, 1910년에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