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손 추적(秋適)이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민부상서(民部尙書)와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3]추적(秋適)은 시랑(侍郞) 겸 국학교수(國學敎授)로 재임할 때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하였다.
추적의 손자인 추유(秋濡)가 중국으로 귀환하여 명나라 개국공신이 되었다. 추유(秋濡)의 5대손인 추수경(秋水鏡)은 중국 귀주성(貴州省) 오현군(五賢郡) 출신으로 1591년 명나라의 무강자사(武康刺史)가 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되어 공을 세운 후 전주에 정착하였고, 완산부원군에 추봉되면서 전주 추씨(全州秋氏)로 분관하였다.
추나라 추 鄒
추(鄒, 병음 : Zou)씨는 중국 범양에서 계출된 성씨로 전한다. 추(鄒)씨는 중국 백가성 제35위이다. 인물로는 한나라 헌제(獻帝) 때 어양태수(漁陽太守)를 지낸 추단(鄒丹)이 있다.
추(鄒)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78명으로 조사되었다. 고구려의 추발소(鄒勃素)가 32년(대무신왕 15년) 남부사자(南部使者)로서 비류부장(沸流部長)에 임명되었다. 추허조(鄒許祖)는 후백제견훤의 장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