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3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비변사 낭청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방어사로 일본군과 교전 중 옆구리와 머리에 상처를 입어 요양 중 진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나중에 수원부사로 제수되었다. 1592년 모친상을 당하고 고향에서 쉬려 했으나 권율의 부탁으로 중군장이 되고, 이듬해 권율의 조방장(助防將)으로서 행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가자되었는데, 이를 시기한 이이첨 등의 사간들에 의해 이후 십수 차례 탄핵을 당했지만 선조의 배려로 모두 무마된다. 1604년 행주에서 승전한 공으로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봉되어 효충장의선무공신(效忠仗義宣武功臣)이라는 훈호를 하사받고 풍양군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