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셸은 자신의 당을 사회민주당과 새로운 합동을 이루는 데 이끌었다. 빌리 브란트 수상 아래에서 외무장관 겸 부수상이 되었다. 그들의 지도 아래, 서독은 소비에트 연방과의 화해 조정을 설득하고 정식으로 동독의 현존을 인정하였다. 이 정책은 자유/사회 민주당 양당원들이 야당으로 편을 바꾸는 여러 방향과 함께 대규모의 공개 토론이 일어나는 원인을 일으켰다. 브란트를 축출하는 시도에 실패하였어도, 합동 정부는 그 박약한 다수를 잃고 말았다. 1972년 의회의 해산과 초순의 선거에 의하여 의회적 궁지가 끝났다.
1974년5월 7일 브란트 수상이 자신의 측근 귄터 기욤의 간첩 혐의 사건으로 사임하자, 셸은 5월 16일까지 수상의 직무 대행을 맡았다. 때마침에 셸은 4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이후의 세월
1979년6월 30일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후, 유럽 운동 기구의 회장 겸 하원의원 회의의 의장(1980~85), 유럽 연방주의 연합의 독일부 회장(1980~89)를 역임하였다. 1991년 이래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의 명예 회장을 지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