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왕조(베트남어: Mạc Triều / 莫朝)는 1527년부터 1677년까지 베트남 북부를 지배한 대월의 왕조이다. 1527년부터 1533년까지 대월 전역을 통치했고, 수도인 동킹을 상실한 1533년부터 1592년까지는 베트남 북부 지역을 다스렸다.
건국
16세기 후레조 조정은 권력 쟁탈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1527년 권신 막당중은 레 왕조의 공황을 폐위를 하고, 선양하는 방식으로 제위를 찬탈하였고, 여기서 후 레 왕조는 일시적으로 멸망하여 막 왕조가 건국 되었다.
발전
막당중은 즉위 직후는 레 왕조의 제도를 답습하여 민심의 통일을 도모함과 동시에, 명사의 검증 등 국내에 있어서의 제위 찬탈의 동요를 차단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한편 1528년 레 왕조의 전제(田制)나 병제를 새롭게 정비하였고, 또 화폐 주조를 실시하는 등 내정을 정비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1530년에 막당중으로부터 제위를 받은 막당조아인은 법령을 정비해, 조세 부역을 경감한 것으로 국력이 안정되는 막 왕조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전성기를 맞이한 막 왕조는 레 왕조 부흥을 꿈꾸는 반대 세력이 존재하여 레 왕조 영토를 3분의 2를 지배하고 나머지는 막 왕조의 통치력이 미치지 않았다. 그 막 왕조와 항쟁을 펼친 인물이 응우옌낌이다. 똥선(Tống Sơn) 출신으로 레 왕조의 옛 신하인 응우옌낌은 막 왕조가 건국하면서 라오스 방면으로 피해서 라오스 국왕의 지원을 받고 반 막 왕조 운동을 전개하였고, 레짱똥을 옹립하여 막 왕조에 대항했다. 또 응우옌낌은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레짱똥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찬탈자인 막당중에 대한 토벌군 출병을 하는 등의 외교 작전을 전개했다.
당시 명나라는 가정제가 통치하는 시대였고, 명나라는 모백온을 파견해, 막 왕조가 항복하면 신속하게 토벌 하는 것과 화전을 두 경우를 고려하여 교섭을 하였다. 이 시기 막당중이 사망하고, 그 아들인 막푹하이(Mạc Phúc Hải)가 즉위 하고 있었지만, 조정의 실권을 장악 하고 있던 상왕 막당중은 국내의 반대 세력이 배반을 두려워하여 명나라에 신속하게 항복에 결정하자, 명나라는 막당중의 항복을 인정하여 막당중을 안남도통사(安南都統使)에 임명하였다. 이 사건으로 명나라의 대립 관계를 개선한 막 왕조이지만, 국내의 반대 세력은 세력이 강대해져서 사실상 베트남은 막조와 반막세력으로 양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방 정권으로 전락
반막 세력을 대표하는 응우옌낌과 만났지만, 1543년 부하에 의해 독살되어 그 실권은 정검이 차지했다. 그 막왕조에서는 막푹응우옌, 막머우헙이 즉위 하여 찐씨 일족과 항쟁을 계속했다. 그리고 1592년 찐뚱은 결국 하노이를 공략, 막머우헙을 살해하였다.
그러나 막왕조의 잔당은 그 후 청나라의 보호하에서 1677년까지 지방 정권으로서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