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의 사료에 따라 실존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치카우지의 자녀 또는 야스치카의 자녀인 마츠다이라 노부미츠로서, 무로마치 막부의 만도코로 집사 이세씨의 피관이 되어 교토에 출사했다고 기록된 것이 무가로서의 마츠다이라가의 첫 출발이다. 이로써 미카와의 아시카가 쇼군가의 직할령인 고료소 경영을 장악한 노부미츠는 마츠다이라향에서 볼때 남쪽 평야의 현관인 누가타군이와즈성 (오카자키시 북부 이와즈정)으로 거성을 옮기자, 니시미카와의 히라노부로 세력을 확대해 각지에 제자를 분봉하고 18 마츠다이라로 불리는 다수의 분가를 창설했다. 또, 같은 무렵 (간쇼 연간)에 오미국 스가우라장・오우라장 (시가현나가하마시니시아자이정 스가우라・오우라)에 파견된 교고쿠씨의 대관에 마츠다이라 마스치카라는 인물이 있어, 간쇼 2년 (1461년) 10월 13일, 교토의 히노 카츠미츠의 명에 의해, 이전부터 대관이 습격당하는 등, 대립하고 있던 스기우라 주민에게 군사 공격을 가할때에는 오우라 주민뿐만 아니라, 미카와로부터 휘하의 원군이 수만기 정도 동원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 오미의 마츠다이라씨도 미카와의 마츠다이라씨 (미카와 마츠다이라씨)의 동족 중 한명으로 여겨진다.
노부미츠의 아들 가운데, 헤키카이군안죠성 (안죠시)을 부여받은 안죠 마츠다이라 초대 당주인 3남 치카타다 (1501년 사망, 후에 종가 4대 당주로 꼽힘)는 이다노 (오카자키시이다정 근처)에서 나카조씨 등을 물리치고 무용을 높인 것 외, 당초 주어지고 있던 카모다향 (오카자키시 카모다정)의 관지에, 증상사 카이잔 성총손 제자의 우저를 불러 마츠다이라씨 보리사 다이쥬지를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