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이름은
스페인어 이름입니다. 첫 번째 혹은 부계
성은 '
아나톨' 이며 두 번째 혹은 모계 성은 '
아리스테기' 입니다.
마누엘 아나톨 아리스테기(바스크어: Manuel Anatol Aristegi;[1] 1903년 5월 8일, 바스크 주 이룬 ~ 1990년 5월 17일)는 프랑스로 귀화한 전 축구 선수이다.
축구 경력
아나톨은 스페인의 바스크 주에 있는 이룬 마을 출신이다. 그는 초창기에 스페인의 레알 우니온, 아틀레틱 빌바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이 세 구단에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1929년 아나톨은 프랑스로 건너가 라싱 파리에 입단했다.[3] 라싱 소속으로, 그는 구단의 주장 완장을 차고, 2년차에 소속 구단의 쿠프 드 프랑스 결승행일 이끌었다. 결승전에서 라싱 파리는 세트에 1-3으로 패하였다.[4]
르네 프티의 경우처럼 스페인계 혈통으로 관심을 받던 아나톨은 1929년에 프랑스에 귀화하여 1929년 3월 24일에 2-0으로 이긴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프랑스 국가대표팀 첫 경기를 치렀다.[5] 그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경기에 15번 더 출전했고, 1930년 3월 23일, 3-3으로 비긴 스위스와의 경기에서는 하나뿐인 국가대표팀 경기 득점을 올렸다. 이 골은 문전 40미터 앞에서 기록한 골이었다.[6] 그는 근무 조건이 맞지 않았기에 1930 월드컵에 참가할 수 없었고, 4년 후에 열린 다음 대회에도 프랑스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육상 경력
아나톨은 단거리 달리기에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1923년 스페인 전국 육상 대회에서 100미터 달리기, 200미터 달리기, 400미터 달리기, 그리고 4 × 400미터 계주를 모두 석권했다.[7] 그러나, 그는 서류에서 프랑스인으로 표기되어 있었고,(그의 부친은 프랑스령 바스크 출신이나, 본인은 당시까지 스페인에서 샀다) 상을 준우승자 상으로 대신 받았고,[8] 기록 또한 그렇게 남아 있었다.[9] 그는 스페인의 작명 관습 때문에 행정 절차의 문제나 자신이 축구 선수로 뛰었다는 배경을 숨기기 위해서나 1924년 하계 올림픽에 M. A. 아리스테기(M. A. Aristegui)의 이름을 달고 출전했다.[10] 그는 400미터 부문에서 결선까지 오르지는 못하였다.[11]
각주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