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서 쇼와 천황의 전쟁 책임과 관련해, 스스로의 일기를 증거 자료로 제출하였다. 이 일기는 기도 일기라고 불리는 것으로, 속에는 옥새관의 기밀취급비서 시절부터 옥새관이 된 이후까지의 일들이 자세히 기록돼있다.[1] 사위의 충고로 이 일기를 국제전범재판소 극동 사무소에 제출한 기도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1955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가석방되었다.
말년에는 해외에서 제작한 제2차 세계 대전 다큐멘터리 인터뷰에 응했고, 1977년4월 6일에 궁내청 병원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