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게임(영어: The Great Game 더 그레이트 게임[*]) 또는 그림자의 토너먼트(러시아어: Турниры теней)은 중앙아시아, 특히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티베트 일대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19세기 대영 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전략적인 경쟁이자 냉전을 총칭하는 의미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두 식민 제국이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영토를 획득하고 국경을 재정립하기 위해 군사 개입과 외교적 협상을 거리낌없이 사용했지만 양측 사이의 갈등이 직접적인 전면전으로 비화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1][설명 2] 이들은 간접적으로, 그러나 어떤면에서는 급진적으로 각지에서 맞부딫혔다. 러시아는 튀르키스탄을 정복했으며, 영국은 자국령 식민지 인도의 국경을 확장하고 경계를 그었다. 이로 인해 카스피해 연안에서 동히말라야에 이르는 수많은 독립국가, 부족들, 군주국들이 20세기 초까지 두 제국의 보호령(사실상 속국)이나 직할령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양측은 그레이트 게임 기간 동안 아프가니스탄 국경 위원회를 포함하여 여러 조약을 맺고 상호간의 협력을 이어나가는 행보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가 자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를 위협할 것이라 우려했고, 러시아는 영국의 영향력이 중앙아시아로 확대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 결과 영국은 인도에 대한 러시아의 모든 접근을 차단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으며,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정복을 계속해나갔다. 영국인들로 하여금 인도 식민지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만든 이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노력은 종종 유럽에서 그들의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그들은 1810년 이후에는 인도를 직접 공격할 의도가 없었다. 인도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 계획 역시 이따금 제안되기는 했으나 결코 실현되지는 않았다.
1895년 9월에 런던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양국 정부는 외교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아프가니스탄과 러시아 제국 사이의 국경을 정의하는 파미르 경계 위원회 의정서에 서명했다. 그의 일환으로 1907년 8월,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 동맹국들을 만들고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티베트의 지배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영러 협상이 체결됨으로써 그레이트 게임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일부 관점에서는 1917년 10월의 러시아 혁명을 그 종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과 함께 식민지 시기가 끝난 이후에도, 이 용어는 중앙아시아의 강대국과 지역 강국의 지정학적 권력및 그 영향력에 대한 경쟁을 의미하는 말로써 계속 사용하고 있다.[2][3]
명칭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라는 용어는 19세기 이전에도 종종 사용된 것이 확인되지만, 이때에는 단지 카드나 주사위와 같은 도박성 짙은 게임과 관련이 있는 정도였다. 이와 동의어인 프랑스어 "르 그랑쥬Le grand jeu"의 기원은 적어도 15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위험, 우연, 속임수의 의미와 연관되어 있었다.
역사적 의미에서 이 용어의 사용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되었다. 특히 우리가 현재까지도 익히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제시한 것은 영국 동인도 회사웨일스 기병대의 6대 대공의 정보 장교인 아서 코놀리(1807년 ~ 1842년)였다.[4] 1840년 7월, 코놀리는 칸다하르의 새로운 총독으로 최근 임명된 헨리 롤린슨 소령에게 "당신은 거대하고 고귀한 게임(a great game, a noble game)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서신을 보냈다. 코놀리는 롤린슨의 새로운 직책이 그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인도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믿었으며, 그에 대해서 자신의 희망을 요약하는 편지를 따로 적었다.
If the British Government would only play the grand game – help Russia cordially to all that she has a right to expect – shake hands with Persia – get her all possible amends from Oosbegs – force the Bukhara Amir to be just to us, the Afghans, and other Oosbeg states, and his own kingdom – but why go on; you know my, at any rate in one sense, enlarged views. The expediency, nay the necessity of them will be seen, and we shall play the noble part that the first Christian nation of the world ought to fill. 만약 영국 정부가 오직 위대한 게임만을ㅡ즉 러시아를 진심으로 도와주는 것, 페르시아와 손을 잡는 것, 우즈베크인들로부터 가능한 한 모든 보상을 받는 것, 그리고 부하라의 아미르를 우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다른 우즈베크 국가들과 그의 왕국에만 있도록 강요하는 것을 한다면ㅡ그러나 이것이 왜 계속되는지; 어떤 의미에서든지, 저의 확대된 견해를 당신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편리함, 아니 그들의 필요성이 확연히 보일 것이므로, 우리는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서 해야할 고귀한 역할을 이행해야 할 것입니다.
대영제국의 소설가러디어드 키플링의 1901년 소설 「Kim」은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용어를 조금 더 대중적이고 주류적으로 변모하게 함으로써 강대국 경쟁과의 연관성을 높였다.[5]1979년 소련-아프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 소설은 더욱 인기를 끌었다. 한편 러시아어로 "그레이트 게임"을 나타내는 "그림자의 토너먼트Турниры теней"은 러시아 외교관 카를 네셀로데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6년 11월 10일 H.W.C. 데이비스 교수는 그의 발표 The Great Game in Asia (1800–1844)에서 최초로 학술적인 용어로서 "그레이트 게임"을 사용했다. 중앙아시아에서의 영러의 경쟁을 묘사하기 위해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일반화되었다.
Carrington, Michael. Officers Gentlemen and Thieves: The Looting of Monasteries during the 1903/4 Younghusband Mission to Tibet, Modern Asian Studies 37, 1 (2003), PP 81–109.
Ahrari, Mohammed E.; James Beal (January 1996). 〈The New Great Game in Muslim Central Asia〉. 《McNair Paper 47》. Institute for National Strategic Studies and National Defense University. 2013년 7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8월 2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