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Rose Speedway》는 폴 매카트니 앤 윙스의 두 번째 음반이며, 매카트니가 비틀즈에서 나간 뒤 네 번째로 발매한 음반이다. 상업적으로 약한 성과를 보였던 음반 《Wild Life》 이후, 1971년에 출시했다. 《Red Rose Speedway》는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음반의 수록곡 〈My Love〉은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하였고, 《Red Rose Speedway》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곡이 되었다.
배경
1972년 초, 매카트니는 기타 연주자를 넣어 5인조 밴드로 늘리기로, 그리고 그룹과 함께 투어를 하기로 결심한다.[1] 그룹은 수개월 동안 유럽을 가로질러, 《윙스 유니버시티 투어》를 시작한다.[1]
《Red Rose Speedway》의 녹음은 1972년 3월에 시작되었다.[3] 당초 더블 앨범으로 계획된 이 음반에 매카트니는 윙스의 결성 이전, 《Ram》 세션 기간 중 녹음했고 발매하지 않은 오리지널 곡을 수록하기로 결심했다.[3] 〈Get on the Right Thing〉과 〈Little Lamb Dragonfly〉은 음반의 최종판에 수록된다.[4] 세션은 3월 19일 런던의 올림픽 스튜디오에서 열렸고 1년 동안 산발적으로 계속되었다.[1]글린 존스는 올림픽 스튜디오의 세션에서 프로듀서로 초대되었으나, 이후 매카트니와의 여러 의견 충돌로 "이제야 서로를 존중해줄 수 있겠군."이란 말을 남기고 4월 17일에 작파하였다.[5] 추가 녹음은 1972년 10월과 11월에 애비 로드 스튜디오와 올림픽에서 진행되었다.[6] 그해 모건 스튜디오, 트라이던트 스튜디오, 그리고 아일랜드 스튜디오 등의 런던에 소재한 스튜디오에서도 녹음이 이루어졌다.[7]
《Red Rose Speedway》는 정말 자신이 없는 음반이다... 거기엔 〈My Love〉가 있지만 뭔가가 빠져있다. 우리는 더 중후한 소리가 필요했다… 그건 끔찍하게 의심스러운 기간이었다.[8]
음반은 매카트니에 의해 싱글 디스크로 단축되었다. 헨리 맥컬러에 따르면, 이는 더 많은 음반을 생산하고, 가격은 줄이기 위한 시도라고 한다.[3] 하지만 그 결정은 EMI이 내린 것이었으며,[9] 재료들은 충분할 만큼의 높은 수준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0][11] 음반사는 성적이 좋지 못했던 윙스의 초기 싱글과 《Wild Life》를 유념하고 있었다.[7] 공식적으로 발매된 음반에는 마지막에 〈Hold Me Tight〉, 〈Lazy Dynamite〉, 〈Hands of Love〉 그리고 〈Power Cut〉가 합쳐진 11분 가량의 메들리가 있다. 이는 비틀즈의 《Abbey Road》 메들리와 비슷한 스타일이다.[12] 〈Power Cut〉은 1972년 광부 파업 당시 쓰여졌다.[13] 데니 레인은 나중에 "밴드를 위한 전시회에 가깝다"며 원래 형태가 아닌 싱글 앨범으로 발매되어 실망을 표했다.[7] 누락된 곡 중 레인이 작곡한 〈I Would Only Smile〉과 〈I Lie Around〉은 그가 리드 보컬을 맡기도 했다.[14] 맥컬러도 공식적으로 발매된 음반에 매카트니의 록 위주 곡이 가벼운 곡으로 바뀐 것 때문에, 비슷하게 실망했다.[7]
동명의 제임스 본드 영화의 주제곡인 〈Live and Let Die〉는 《Red Rose Speedway》 세션 중에 녹음되었지만, 《Live and Let Die》 사운드트랙에 수록되었다.[15] 레인은 자신의 솔로 음반 《Japanese Tears》에 〈I Would Only Smile〉를 수록했다.[16] 〈Mama's Little Girl〉도 세션 중에 녹음되었고 1990년에 B면 〈Put It There〉로 싱글로 발매된다.[1] 버려진 다른 곡 중에는 〈Night Out〉, 〈Jazz Street〉, 〈Best Friend〉, 〈Thank You Darling〉, 〈The Mess〉 그리고 토마스 웨인의 곡 〈Tragedy〉의 커버판이 있다.
발매
음반은 발매에 앞서, 1973년 3월에 앞면 〈My Love〉, 뒷면은 〈The Mess〉인 리드 싱글이 발매되었다.[17] 〈The Mess〉는 1972년 유럽 투어 때 라이브한 것을 녹음한 것이다.[18]애플 레코드는 《1962–1966》과 《1967–1970》, 두 컴필레이션 앨범을 먼저 발매했다.[19][20] 《Red Rose Speedway》는 미국에서 1973년 4월 30일, 영국에서 5월 4일에 발매했다.[21][22] 음반은 책같은 음반 커버 안에 윙스의 라이브 공연이 찍힌 12쪽의 작은 책자가 포장되어 있다.[23] 커버 디자인은 할리데이비슨의 셔블헤드 엔진을 곽광 촬영으로 찍은 것으로, 에두아르도 파올로치가 맡았으며, 스티비 원더의 "We love ya baby" 점자 메시지를 뒷표지에 넣었다.
〈My Love〉는 영국 싱글 차트 9위까지 올랐고,[24] 미국 빌보드 핫 100과 빌보드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에서 정상에 오른다.[25] 이 싱글은 음반에 대한 기대치를 올렸고, 《Red Rose Speedway》는 영국 차트에서 5위, 미국 차트에서는 1위까지 올랐다.[25]
오리지널 콤팩트 디스트판은, EMI의 명예(Fame) 라벨을 달고 1987년 10월 5일에 발매되었다.[nb 1] 다음의 세 추가곡이 들어있다. 〈I Lie Around〉, 〈Country Dreamer〉 그리고 〈The Mess (Live at The Hague)〉. LP판의 CD 에디션은 추가곡을 누락하고 같은 날 발매되었다.[nb 2] 1993년, 《Red Rose Speedway》는 《The Paul McCartney Collection》의 일부로서, 리마스터 후 재발매되었다. 추가곡은 〈C Moon〉, 〈Hi, Hi, Hi〉, 〈The Mess (Live at The Hague)〉 (B면 〈My Love〉) 그리고 〈I Lie Around〉 (B면 〈Live and Let Die〉)이다.[13] 〈Country Dreamer〉는 이후 같은 시리즈의 《Band on the Run》에 수록되어 재발매되었다.
《Red Rose Speedway》는 당시의 음악 비평가에게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34][35] 많은 이들이 2류 정도의 곡이라고 일축했다.[7] 작가이자 비평가인 밥 워핀든은 1981년에, 음반은 그와 윙스가 《Band on the Run》를 발매하여 마침내 완전한 존경을 받기 전의 "관객들을 계속해서 짜증나게 하는" 매카트니의 예라고 저술했다.[36] 《렛 잇 록》지의 존 피전은 2면의 메들리는 전형적인 매카트니의 작사가로서의 "나태한" 사고방식을 나타낸다며, "《Red Rose Speedway》의 소리는 많은 차를 마신 후, 불 앞에서 슬리퍼를 신고, 카펫에 발을 올려놓고 쓴 것 같다. 그걸 듣고 있으면 마시멜로 요정과 10 라운드는 뛰고 온 것 같다."고 했다. 피전은 음반을 벌거숭이 임금님에 비유하며, 누구라도 매카트니의 판단력에 도전한다면 엉덩이를 걷어 차일 것이고, 매카트니는 이를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37] 빌리지 보이스의 비평가 로버트 크리스트가우는 매카트니가 "목적 없는 엉뚱한 생각"에 의존한다고 조롱했고, 음반에 대해 "록앤롤 역사상 틀림없는 최악의 음반"이라고 묘사했다.[28]
그러나 작가 마이클 프론타니에 따르면, 음악가 레니 케이가 쓴 《롤링 스톤》의 대체로 좋음(generally favourable) 리뷰에서, 그가 매카트니에게 1970년까지 적대적이었던 감정이 음반을 통해 반전되었다고 한다.[38] 프론타니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매카트니의 음악 세상이 멍청하고 안이한 몇몇 해설자에게 계속해서 비판을 받을 때, 케이는 리뷰에서 그것이 예술이 가야할 길을 표시했고, 록 비평가는 더 이상 매카트니에 왈가불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39] 《뉴욕 타임스》의 이안 도브는, 매카트니의 결과물은 계속해서 전 비틀즈 멤버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에 비하면 못해지고 있지만, 《Red Rose Speedway》는 아직까지 그의 최고 음반으로 여겨진다고 적었다.[40] 《NME》의 저술물에서, 토니 타일러는 음반을 "경량(lightweight)"이며, "지적인 자세(intellectual posture)"가 부족하나, "좋은 선율 구조로 깊은 인상을 주는데에 성공했다."고 덧붙였다.[41]
《NME》와 같이, 《롤링 스톤》에서도 《Red Rose Speedway》의 의견이 이내 바뀌었다.[42] 1973년 롤링 스톤 레코드 가이즈의 저술물에서, 존 스웬슨은 음반에 대해 "매카트니의 솔로 가수, 밴드 리더로서의 최악의 면"이며, "약함과 감상적인 헛소리로 가득찼다"고 말했다.[43] 니콜라스 샤프너는 자신의 1977년 저서 《The Beatles Forever》에서, 음반을 "귀엽게 포동포동하다 – 매력있고, 무해하고, 유쾌한 휴식... 햇볕 아래에서의 늘어지는 오후의 완벽한 배경이다"라고 묘사했다.[44]
올뮤직의 편집장 스티븐 토마스 얼와인은 《Red Rose Speedway》에 대해 매카트니의 "가장 일관성 없는 음반"이고 "음반의 스냅샷은... 고의로 방해한 것 같다. 어떤 제3자의 눈으로 봐도 생기있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핵심층을 들여다 보면, 매카트니의 자그마한 팡파레는 취하게 만들 것이다. 선율 뿐만이 아닌, 안이한 생산과 즉석적인 발명 덕이다."라고 덧붙였다.[27] 비틀즈 전기 작가 로버트 로드리게스는 "극도로 고르지 않은 곡 모음집"이며, 선별되어 골라진 애비 로드 스타일의 메들리는 "그저 미완성이 아닌, 엉터리다"라고 했다.[45] 글린 존스가 음반의 최종판을 "거슬린다"고 폄하할 때, 하워드 수네즈는 "그러나 음반 리뷰에서는 세 개 내지 다섯 개 이상의 별을 줄 수 밖에 없었다."고 적었다[46]
"Thank You Darling" – 폴 매카트니와 린다 매카트니의 듀엣곡. 아직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Seaside Woman" – 린다 매카트니가 리더 보컬을 맡은 곡. 1977년 싱글 〈Suzy and the Red Stripes〉의 뒷면에 수록되어 발매된다.
"Soily" – 라이브를 녹음한 것을 믹스다운한 것. 하지만 음반의 후보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매키트니는 1972년 1월에 자신의 홈 스튜디오에서 곡을 녹음하기도 했고,[1] 이는 매카트니의 미개봉 "스튜디오 공연" 영화 《One Hand Clapping》에 담겼다. 곡은 맥니콜스 스포츠 아레나의 라이브 음반 《Wings over America》에 수록됨으로써, 공식적으로 발매되었다.[49][50]
"Henry's Blues" – 윙스의 기타 연주자 헨리 맥컬러가 리드 보컬과 슬라이드 기타를 맡았다. 1972년 윙스의 유럽 투어 도중 라이브 녹음했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Best Friend" – 라이브 녹음한 것을 스튜디오에서 믹스했으나,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1882" –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McCartney》의 제작 시기에 데모가 녹음된 곡. 1972년 1월 집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바 있다.[1] 〈The Mess〉의 녹음이 이루어졌던 콘서트와 같은 곳(1972년 8월 21일, 헤이그)에서 라이브 녹음되었다. 스튜디오에서 오버더빙을 추가했으나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I Would Only Smile" – 데니 레인이 리드 보컬을 맡은 곡. 나중에 레니의 솔로 음반 《Japanese Tears》에 수록된다.[51]
참가 인원
윙스
폴 매카트니 – 보컬, 피아노, 베이스, 기타, 전자 피아노, 멜로트론, 첼레스타, 무그 신시사이저
Doggett, Peter (2011). 《You Never Give Me Your Money: The Beatles After the Breakup》. New York, NY: It Books. ISBN978-0-06-177418-8.
Frontani, Michael (2009). 〈The Solo Years〉. Womack, Kenneth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Beatles》. Cambridge, UK: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978-0-521-689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