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두멀레이[a](영어: Daniel Dumile/ˈduːməleɪ/, 1971년7월 13일[2] ~ 2020년10월 31일)은 MF DOOM 혹은 간단히 DOOM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였던 영국 출생의 미국 래퍼이자 음악 프로듀서이다. 가사에 드러난 난해한 언어 유희나, 시그니처인 마스크, 그리고 "슈퍼빌런"이라는 무대의 페르소나로 널리 알려져 있는 두멀레이는 2000년대 언더그라운드 힙합과 얼터너티브 힙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인물이다.[3][4] 두멀레이가 사망한 후 버라이어티는 "가장 유명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하였다.[5]
런던에서 태어난 두멀레이는 어린 시절에 뉴욕의 롱아일랜드로 이사를 왔다. 1988년 힙합 트리오 KMD의 멤버로 들어가 제브 러브 X라는 활동명으로 공연을 하며 음악 경력을 시작하였다. KMD는 멤버이자 두멀레이의 동생인 DJ 서브록이 사망한 1993년에 해체되었다. 활동 중단 이후, 두멀레이는 1990년대 말 오픈 마이크 이벤트에서 공연을 시작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두멀레이는 마블 코믹스의 슈퍼빌런 닥터 둠의 금속 마스크를 착용하고 활동하였으며, 이후 1999년에 발매한 첫 솔로 음반 “Operation: Doomsday”의 표지에도 이가 표현되었다. 그 후 두멀레이는 MF DOOM이라는 페르소나를 이용하며,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 때는 대중 앞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두멀레이는 네 장의 솔로 음반과 세 장의 컬래버레이션 음반을 발매하였다. 추가로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2004년 작 “Mm..Food”를 MF DOOM이라는 이름으로 냈으며, 그 외 두 장은 빅터 본(Victor Vaughn), 한 장은 킹 기도라(King Geedorah)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냈다. 프로듀서 매들립과 협업하여 매드빌런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에 발표한 “Madvillainy”는 두멀레이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이자 힙합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음반 중 하나로 꼽힌다.[6] 이듬해에는 데인저 마우스와 함께 데인저 둠이라는 듀오를 결성하여 “The Mouse and the Mask”를 발매하였다.
두멀레이는 생전 미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미국 시민권을 한 번도 취득하지 않았다. 결국 2010년, 전해에 발매한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정규 음반 “Born Like This”의 세계 투어 후 입국 거부를 당하였다. 런던으로 돌아가 나머지 생애를 살면서 두멀레이는 즈네이로 자넬과 JJ DOOM을 결성해 “Key to the Kuffs”를, 비숍 네루와는 “NehruvianDoom”을, 자페이스와는 “Czarface Meets Metal Face”와 “Super What?”을 발매하였다.
어린 시절
두멀레이는 1971년 7월 13일[7][2] 런던에서 트리니다드인 어머니와 짐바브웨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4][8] 두멀레이에 의하면 임신했을 당시는 미국이었으나, 어머니가 가족을 방문하러 영국으로 갔기 때문에 런던에서 태어났다고 언급하였다.[9] 이후 아직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뉴욕의 롱아일랜드로 이사를 갔으며, 롱비치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10] 두멀레이는 런던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없고, 부모 또한 영국 문화와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였다.[9]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영국 국적만을 가진 채 살아갔다.[11]
두멀레이는 3학년 여름이 되던 때부터 DJ 일을 시작하였다.[12][13] 어렸을 때 만화를 좋아했고, 만화책을 좋아하였으며, 친구들과 가족들은 성에서 이름을 따 "둠"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14][15]
경력
1998년 ~ 1997년: KMD, 서브록의 사망과 활동 중단
제브 러브 X(영어: Zev Love X)[16]라는 이름으로 두멀레이는 1988년 남동생인 DJ 서브록과 후에 오닉스 더 버스스톤 키드로 바뀌는 로단과 함께 힙합 그룹 KMD를 결성하였다.[17]A&R 대표인 단테 로스는 힙합 그룹 서드 베이스를 통하여 KMD를 알게 되었고, 엘렉트라 레코드와의 계약을 성공하게 된다.[18] KMD의 첫 녹음물은 서드 베이스의 “The Cactus Album”에 수록된 ‘The Gas Face’이며,[17] 그 후 첫 정규 음반 “Mr. Hood”를 발매하였다. 두멀레이는 ‘The Gas Face’에서 마지막 벌스를 불렀는데, 해당 트랙에서 피트 나이스의 벌스에서는 해당 문장을 두멀레이가 썼다고 언급한다.[19]
1993년 4월 23일, KMD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인 “Black Bastards”가 발매되기 직전,[17] 서브록이 롱아일랜드 고속도로를 건너던 중 차에 치이면서 사망하였다.[20][21] 두멀레이는 그 다음 달 동안 혼자서 음반을 완성하였고, 결국 1994년 5월 3일에 발매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22] KMD가 엘렉트라와 이별을 하게 되고, 흑인이 목을 매단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음반의 표지로 때문에 발매가 보류되기도 하였다.[23]
동생이 사망한 후, 두멀레이는 1994년부터 1994년까지 힙합신에서 떨어져 "빌어먹을 정도로 노숙자처럼 살았으며, 맨해튼의 거리를 걷고, 벤치에서 잠을 자며" 살았다. 이후 1990년대 말 애틀랜타에 정착하였다. 두멀레이에 따르면 해당 기간 동안 "상처로부터 회복"하고, "그렇게 심하게 자신을 괴롭히던 산업에 대한 복수를 맹세했다"고 언급하였다.[17] “Black Bastards”는 해당 시대까지 부틀렉으로만 남아있었고,[24] 2000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발매되었다.
음악 스타일
두멀레이의 가사는 언어 유희가 가득한 것으로 유명하다.[25][26] 브래들리와 두보아는 두멀레이를 "힙합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표현하면서 두멀레이의 "거친 바리톤의 목소리가 만화책이나 형이상학에서 끌어낸 복잡하게 이루어진 암시를 엮었다"고 이야기하였다.[27] 더 링어의 사망 기사에서는 두멀레이의 플로우가 "느긋하고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정밀한 테크닉으로 우리에게 전달하였다"고 언급하였으며, 라임을 사용하는 것은 빅펀이나 에미넴의 흐름에서는 벗어났다고 언급했다.[28]
두멀레이가 노래를 만들 때는 종종 영화의 샘플링이나 인용 등이 등장하였다.[25][26] CMJ 뉴 뮤직 먼슬리가 “Special Herbs, Vols. 5 & 6”를 리뷰할 때는 두멀레이의 비트를 "솔 재즈"에 비유하였다.[29]
MF DOOM 페르소나
두멀레이는 MF DOOM 캐릭터를 자신의 음악에서 언급할 수 있는 뒷이야기를 가진 또 다른 자아로 만들었다.[30] MF DOOM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슈퍼빌런 닥터 둠, G.I. 조의 데스트로, 오페라의 유령의 에릭의 요소를 합하여 만들어졌다.[31] 그중 닥터 둠과 팬텀처럼 두멀레이는 MF DOOM으로 노래를 할 때 자신을 삼인칭으로 지칭한다.[32] 또한 데뷔 음반 “Operation: Doomsday”의 표지에도 등장한 MF DOOM의 시그니처 금속 마스크는 닥터 둠이 착용하는 것과 비슷하다.[33]
두멀레이는 공연을 할 때 항상 마스크를 끼고 있었고, 마스크를 끼지 않은 상태로 찍은 것은 KMD 시절에 찍은 일부 사진이나 비디오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34] 후기에 사용하였던 마스크는 2000년에 개봉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35] 학자인 헤르시니 바나 영은 닥터 둠의 마스크를 착용함으로써 두멀레이는 "음악 산업뿐만 아니라 자신을 이등 시민으로 종속시키는 지배적인 정체정의 구성에서도 적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표현하였다.
두멀레이는 가면을 쓰기 위해 가끔씩 대역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두멀레이는 이를 개념의 논리적인 연장이라고 보았지만, 관객들에게는 좋지 못한 반응을 얻었다.[30] 두멀레이는 처음에 자신이 살을 뺐기 때문에 다르게 보였고, 또 다르게 들렸다고 주장하였다.[36] 2010년 토론토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대역이 두멀레이로 바뀌기 전에 야유를 받기도 하였다.[37]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두멀레이는 자신을 그 캐릭터의 "작가이자 감독"이라고 묘사하였고, "다음에는 백인을 보낼 수도 있다. 누구든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30]
2019년 11월, 어덜트 스윔 페스티벌에서의 공연 도중 전자 음악가 플라잉 로터스가 두멀레이와 함께 무대에 서겠다고 발표하였으나, 해당 공연에서 함께한 것은 코미디언 해니벌 버리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두멀레이가 이 장난에 참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38]
영향
힙합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 중 한 명이라고 불렸던[5] 두멀레이는 같은 예술계 종사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39] 두멀레이와 두 번 협업을 하였던 톰 요크는 "그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바꿨습니다. 제게는 그가 단어를 내뱉는 방식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방식의 의식의 흐름대로 가사를 썼습니다."라고 말했다.[40] 스테레오검은 “Operation: Doomsday”의 20주년 기념 리뷰 글에서 두멀레이가 젊은 래퍼들에게 끼친 "형식적인" 영향력에 주목하였다.[31]런 더 쥬얼스의 멤버 El-P는 두멀레이를 "작가의 작가"라고 표현하였고,[41] 큐팁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래퍼가 가장 좋아하는 래퍼"라고 언급하였다.[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