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영어: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of 2008)는 미국의 대통령 및 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로 2008년11월 4일에 실시되었다. 민주당에서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인 버락 오바마가 후보로 지명되었고, 공화당에서는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인 존 매케인이 후보로 지명되어 각축전을 벌였다. 최종적으로 365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버락 오바마가 미국 사상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50개 주 중에서 메인과 네브래스카를 뺀 48개 주는 승자독식(winner-take-all) 방식으로 선거인을 선거하며, 승자가 그 주의 모든 선거인을 갖는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변의 가능성이 없었지만, 과거에는 전체 유권자의 직접투표 득표에서는 앞서면서도, 선거인 수에서는 뒤져서 대통령에 선출되지 못한 경우가 미국 역사상 3번(선거인단투표 승자를 기준으로 제19대 러더퍼드 헤이스, 제23대 벤저민 해리슨, 제43대 조지 W. 부시까지) 있었다.[3] 가장 최근의 경우가 바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로서, 전체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한 득표(Popular Vote)에서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앞섰(약 54만표)지만, 선거인단 투표(Electoral College Vote)에서 조지 W. 부시가 앞서(271 대 266)서 부시가 대통령이 되었다.[1][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기본 배경과 흐름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존 케리를 간발의 차이로 제치고 재선에 성공한 제43대 대통령조지 W. 부시와 공화당은, 1994년 중간 선거 직후에 지속돼 오던 상하 양원의 다수를 계속 유지하였으나, 2001년9.11 테러 직후에 90%에 이르던 국정 수행 지지율은 2004년 대통령 선거 전후를 기점으로 점차 50%대로 낮아졌다.[4]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장기화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의 미온적 대처 등의 요인으로 지지율이 추락하기 시작하였으며,[5] 급기야 2006년 9월 및 11월의 중간 선거를 전후한 시점에는 지지율이 40% 아래를 밑돌기 시작했다.[6] 민주, 공화 양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확고한 이점을 확보하지는 못하였으나, 결국 민주당이 간발의 차로 상하 양원의 다수를 점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입법부(민주당)와 행정부(조지 W. 부시 정권) 사이에 밀고 당기는 입법 다툼 속에 부시의 지지율은 추락하였으며, 200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직 출마 선언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2007년부터 민주당의 인기와 지지도가 상승하여, 초반부터 민주당의 경선전이 전체 선거 분위기를 주도하였다.
주요 정당의 후보직 경선 결과
민주당
대의원
이 기록은 2008년6월 3일(현지시각)까지의 경선을 포함한 비공식 최종결과(6월 22일 기준)이다. CNN 기준이며, 경우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 5월 31일, 플로리다 주와 미시간주의 경선 결과가 포함(기존 결과의 절반만 인정)됨에 따라 당선을 위해 필요한 대의원 수(매직 넘버)는 2,118명으로 변경되었다. 6월 3일, 버락 오바마 후보가 매직 넘버를 넘어섰다. 그 결과(비공식)는 다음과 같다.
8월 27일, 관례에 따라 콜로라도주덴버시에서 열린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Democratic National Convention, DNC)의 공식후보자 투표절차(호명투표, Roll Call)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개표 중지 및 만장일치 투표'를 제안하여, 이를 받아들인 대의원들의 동의 하에 사회자 낸시 펠로시 미국연방하원의장이 버락 오바마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언,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었다.[7]
이 기록은 2008년6월 22일을 기준하여 현재까지 각 후보자들이 확보한 대의원 수(결과)이다. CNN 기준이며, 경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3월 4일, 존 매케인 후보가 매직 넘버를 넘어섬에 따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 9월 4일의 전당대회에서 이를 수락하였다.
공화당 및 민주당에 소속된 대통령 후보는 양당이 각 주에서 실시하는 예비선거 및 당원 집회를 통해 우선 당의 공식적인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민주당의 예비 선거 및 당원 집회는 2008년1월 4일의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코커스)을 통해 시작하고, 공화당도 같은날 아이오와주에서부터 당원들의 비밀투표(코커스)를 통해 시작된다.
입후보 예정인 후보들은 정식적 출마 표명 및 입후보 신청 이전에 이미 비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중간선거는 2008년 대통령 선거의 유력 후보자에게는 지원 활동 및 자금 모금이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현직 상원의원은 대통령 선거 이전에 중간 선거를 치르고, 정식적인 입후보는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표명하기 시작했다.
2008년1월 15일, 미국미시간주에서 열린 예비선거에서 공화당의 밋 롬니 후보가 승리하였다. 민주당에서는 버락 오바마와 존 에드워즈 후보가 불참한 가운데 힐러리 클린턴이 압승하였으나, 전국(중앙)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선거 날짜를 앞당긴 이번 미시간주 민주당 경선 결과를 원천 무효(선거인단 0명 반영)로 처리하였다.
민주당에서, 버락 오바마는 그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와 조지아주, 콜로라도주 등 총 13개 주에서 승리하였으나, 힐러리 클린턴은 대의원이 많은 뉴욕주(본인의 연고지)과 캘리포니아주, 뉴멕시코주(2월 14일 최종결과 발표) 등 9개 주에서 승리하여,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집계에 의하면 힐러리 후보가 784명의 대의원을, 오바마 후보는 764명을 각각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공화당에서는 존 매케인 후보가, 대의원수가 많은 여섯개 지역 가운데 네 곳을 석권(총 9개 주 승리)하며 압승을 거둬,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수에 거의 근접한 선거인단을 확보, 사실상 후보지명의 팔부능선을 넘었다. 밋 롬니 후보는 북부와 동부지역(합계 8개 주 승리)에서 선전하였으나 기대 이하의 득표를 거두었으며(다음날 전격 사퇴), 그간 사퇴압박에 시달리던 마이크 허커비 후보는 남부 지역 5개 주에서 전통지지층의 도움으로 승리, 선전하여 이변을 연출하였다.
민주당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오하이오주(54%)와 로드아일랜드주(58%)에서의 압승과 더불어 텍사스주의 예비선거(51%, 126명 중 65명 확보)에서 승리하였고, 버락 오바마는 버몬트주(59%)에서의 압승과 함께 그날 텍사스주 예비선거 직후 실시한 당원대회(56%, 67명 중 38명 확보. 3월 11일 CNN과 MSNBC 등의 자체집계결과 보도 발췌)에서 승리했으나, 두 후보자가 확보한 대의원수의 차이가 매우 적어, 이날 경선에서도 최종 후보자를 확정짓지 못했다.
공화당은 이날 4개 주에서 압승하여 당의 공식 후보자가 되기 위한 대의원수(매직 넘버)를 확보한 존 매케인이 최종 후보자로 사실상 확정되었다. 이날 경선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득표를 거둔 마이크 허커비 후보는 경선결과 발표 직후 사퇴하였다.
2008년5월 20일, 오리건주와 켄터키주 예비선거에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모두 승리한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이날 경선으로 유권자들이 직접 선출하는 대의원(3,253명)의 과반수 이상을 확보(1,658명)한 버락 오바마가 오리건(58%)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켄터키(66%)에서 각각 승리하였으나, 두 후보 모두 최종 후보지명을 위해 필요한 대의원 과반수(2,025명)을 확보하지 못했다.
2008년5월 31일, 중앙당의 결정을 무시한 채 선거일자를 일방적으로 앞당겨 경선이 무효처리되었던 플로리다주와 미시간주의 선거인단을 절반(기존 대의원 1명의 투표권을 0.5표로)만 추가 인정하는 민주당 당헌당규위원회(Rules and Bylaws Committee; RBC)의 결정에 따라, 당선을 위한 '매직 넘버'는 종전의 2,025명에서 2,118명으로 변경되었다. 이 결정으로 플로리다와 미시간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각각 56.5명과 38명을, 버락 오바마는 각각 36명과 32명을 추가로 확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 모두 '매직 넘버' 도달에는 실패하였다.[9]
2008년6월 3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이날 몬태나주 예비선거에서 승리(57%)하면서 당의 공식 후보자가 되기 위한 대의원수(매직 넘버)를 확보한 버락 오바마가 최종 후보자로 사실상 확정되었다. 사우스다코타주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55%)하였으나, 매직 넘버 확보에는 실패하였다. 6월 7일, 힐러리 클린턴의 경선후보직 사퇴 및 버락 오바마 지지 선언으로, 민주당의 경선과정도 사실상 종료되었다.
2008년6월 19일, 1976년의 선거보조금(Public Financing)제도 도입 이래 최초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기존 제도를 활용하는 대신, 지지자들의 자발적 비용 모금만으로 선거운동을 치르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맞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는 오바마가 "약속을 지키겠다 해놓고 지키지 않았다"며 비판하였다.[10]
선거 직후, 각 지역(주)별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자료를 모두 합산하였다(위키백과 영어판 참조). 가장 최근에 올라온 자료로 12월 18일 매사추세츠주 국무부 선거관리위원회에 올라온 자료까지 합산하였다. 현지시각 11월 4일 밤(동부시각 밤 11시),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버락 오바마의 당선을 예측,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