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조슈(일본어: 評定衆)는 가마쿠라·무로마치 시대에 설치됐던 권력기구의 이름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최고정무기관이기도 했으며, 행정, 사법, 입법 모두를 관장하는 권력기관이었다. 가마쿠라 막부 탄생의 공신 집안인 여러 고케닌(御家人) 집안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설치됐으며 1225년 호조 야스토키(北条泰時)가 싯켄(執権) 자리에 올라 정무를 본 것이 최초이다. 1333년(겐코우(元弘) 3년) 닛타 요시사다(新田 義貞)에 의해 마지막 싯켄 호조 타카토키(北条俊時)가 자결하고 가마쿠라 체제가 붕괴되기까지 1백여년 간 실질적인 최고 정무 기관으로서 작용했으며 무로마치 시대에는 형식상으로만 존재했다.
호조(北條)씨를 비롯한 가마쿠라 막부의 창업 공신들인 고케닌(御家人)들이,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제2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이에(源頼家)의 권력을 제한하고 실권을 차지하기 위해 쇼지(正治) 원년(1199년) '십삼인의 합의제'(十三人の合議制)를 설치한 것이 시초다.
'효조슈'라는 정식 기구 명칭이 된 것은 1225년 고셋케로부터 양자로써 제4대 세이이타이쇼군 자리에 앉은 구조 요리쓰네(九條頼経)를 보좌하기 위해 싯켄 호조 야스토키가 유력 고케닌 집안 사람들로 구성된 정치적 합의체를 운영한 것이 그 원형이 되었다.
효죠슈가 설치됐던 해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부인 호조 마사코와 오오에노 히로모토가 사망한 해이기도 하였고, 가마쿠라 막부의 창업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전체적으로 정계 은퇴를 하는 시점이기도 했다(『아즈마카가미』 가로쿠 원년(1225년) 12월 21일조).
가마쿠라 막부 공신 2세대로 구성된 새로운 정치적 협의체제인 '효조슈'는 싯켄(執権)을 그 의장으로 하였으며, 가마쿠라 막부 탄생에 공이 컸던 호조 씨가 내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후기에 들어서자 호조 씨 본종가인 도쿠소(得宗)가 막부 기관인 효조슈의 합의 과정을 무시하고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했고, 효조슈는 유명무실해졌다.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뒤, 새로 들어선 무로마치 막부에도 효조슈는 막부의 정치 기관으로 존재는 했으나 실질적인 힘은 없었고, 아시카가 일족에 대한 명예직의 하나로 붙여지는 경향이 강하였으며, 정치 기구로서 효죠슈가 아니라 관직 이름으로서 효죠슈를 내려줬으므로 따로 싯켄은 존재하지 않았다.
관직으로써의 효조슈는 아시카가 씨의 친족인 기라 씨(吉良氏)나 하타케야마 씨(畠山氏) 같이 아시카가 일족 중에서도 세이이타이쇼군과 가장 가까웠던 두 집안 가운데 하나가 맡았으며, 이 두 집안 출신이 아닌 효죠슈를 따로 '출세 효조슈'로 불러 구별하였다.
(註: 연도는 생몰년이 아닌 효죠슈 재임 기간, 명단 이름은 싯켄 포함 효죠슈 전체 명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