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음 봉씨(河陰奉氏)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봉우(奉佑)는 고려 인종 때 문과 갑과(甲科)[1]에 합격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과 위위시경(衛尉寺卿)을 지내고 좌복야(左僕射)에 올라 하음백(河陰伯)에 봉해져서 식읍을 하사받았다. 시조의 묘소는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 마니산에 있으며 시제는 3월 7일과 10월 8일에 한다.
『하음봉씨을축세보(河陰奉氏乙丑世譜)』에는 다음과 같은 출생 설화가 전한다. 1106년(예종 1) 어느 날 강화군(江華郡) 하점면(河岾面) 장정리(長井里) 하음산(河陰山) 기슭의 연못가에 눈부신 광채가 비치더니 이어 석함(石函)이 떠올랐는데 마침 물을 길러 왔던 한 노파가 이상히 여기며 살펴보니 그 속에 용모가 뛰어난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노파가 이 아이를 왕에게 바쳤더니 임금은 궁중에서 양육하라는 명을 내린 후 노파가 봉헌하였다고 하여 성(姓)을 봉(奉)이라 하고, 국가를 보우(保佑)할 인재라 하여 이름을 우(佑)로 지었다고 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봉우가 태어났다는 전설을 가진 봉가지(奉哥池)가 강화군 향토유적 제25호로 지정되었다.
하음(河陰)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일대의 옛 지명이다. 고구려의 동음내현(冬音柰縣)이었다. 신라 통일 후 호음현(沍陰縣)으로 고쳐 해구군(海口郡)에 속하였다. 고려 태조 때 하음현(河陰縣)으로 고쳤고, 1413년(조선 태종 13) 강화(江華)에 통합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강화도호부(江華都護府) 하음(河陰)의 성(姓)으로 이(李)·전(田)·봉(奉)·길(吉)·만(萬) 5성이 기록되어 있다.[4] 1914년 하음면을 간점면과 병합하여 하점면(河岾面)으로 개칭하였다.
하음 봉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명, 무과 급제자 16명, 사마시 합격자 22명을 배출하였다.
봉사종(奉嗣宗) 봉원효(奉元孝) 봉원효(奉元孝) 봉윤(奉綸)
봉겸(奉謙) 봉계세(奉繼世) 봉빈(奉彬) 봉사공(奉思恭) 봉승백(奉承伯) 봉여길(奉汝吉) 봉유신(奉有信) 봉을생(奉乙生) 봉응길(奉應吉) 봉인상(奉麟祥) 봉일려(奉日麗) 봉치구(奉致球) 봉치규(奉致珪) 봉치문(奉致文) 봉효신(奉孝信) 봉희남(奉希男)
봉강(奉橿) 봉계영(奉繼榮) 봉사종(奉嗣宗) 봉식(奉埴) 봉유심(奉惟深) 봉유함(奉惟涵) 봉천상(奉天祥) 봉흠규(奉欽奎)
봉경륜(奉景綸) 봉광하(奉光厦) 봉낙형(奉樂亨) 봉삼산(奉三山) 봉성회(奉聖誨) 봉세정(奉世玎) 봉약명(奉若命) 봉원충(奉元忠) 봉응경(奉應慶) 봉일화(奉日華) 봉일휘(奉日暉) 봉천신(奉天愼) 봉행원(奉行遠) 봉헌(奉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