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선수권-국왕 폐하의 컵(스페인어: Campeonato de España–Copa de Su Majestad el Rey[a])은 줄여서 흔히 국왕컵(스페인어: Copa del Rey[b])이나 줄여서 컵대회(스페인어: La Copa[c])으로 불리며, 1939년부터 1976년까지는 대장군컵(스페인어: Copa del Generalísimo)로 불렸던 연간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스페인의 축구 대회로,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이 주관한다.
이 대회는 1903년에 처음 실시하였으며, 그에 따라 스페인 역사상 가장 오래된 축구 대회이다. 이 대회는 세계에서 가장 명성 높은 국가 컵 대회로 손꼽히기도 한다.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거둔 구단은 이듬해 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획득하게 된다. 만약, 우승을 거둔 구단이 이미 우수한 리그 성적으로 유럽대항전 진출권을 확보한 경우, 유로파리그 진출권은 유럽대항전 진출권을 아직 획득하지 못한 리그의 차상위 순위 구단에게 돌아간다.(2014년까지 우승을 거둔 구단이 유럽대항전 진출권을 확보한 경우에는 우수한 리그 성적으로 진출권을 확보한 경우가 아니면 대회 준우승 구단에게 진출권을 주었었다.)
가장 최근에 우승한 구단은 베티스로 세비야의 라 카르투하에서 열린 2022년 결승전에서 발렌시아를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이기고 통산 3번째 우승을 거두었다. 바르셀로나는 이 대회를 가장 많이 우승한 구단으로, 총 31번의 우승을 거두었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그 다음으로 많은 대회 우승을 거두었는데, 총 24번 정상에 올랐다. 세 번째로 많은 우승을 거둔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 횟수는 19번이다.
역사
1902년, 후안 데 아스토르키아 빌바오 축구단 회장과 훗날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 되는 카를로스 파드로스가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대회를 열 것을 건의하면서 즉위컵(Copa de la Coronación)의 명칭으로 대회가 개최되었다. 4개의 다른 구단이 마드리드 축구단과 함께 대회를 출전했다: 바르셀로나, 에스파뇰 축구단, 마드리드 신 축구단, 그리고 비스카야 빌바오(체육단과 빌바오 축구단의 선수로 구성) 비스카야 빌바오는 결승전에서 마드리드 축구단을 이겼다. 우승컵은 현재 아틀레틱 빌바오의 박물관에 보관중이며, 자신의 수상 명단 맨 위쪽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는 코파 델 레이가 생기기 전의 대회로 따진다. 따라서,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은 이 대회 우승을 정식 우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1][2]
코파 델 레이는 1903년부터 진행된 스페인의 전국 선수권 대회로 (초대 대회 우승은 후안 데 아스토르키아가 주장 겸 회장인 아틀레틱 빌바오가 우승했다)[3] 1928년에 리그 선수권 대회(Campeonato de Liga)가 출범하기 전까지 이 위상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마드리드 시의회의 컵(Copa del Ayuntamiento de Madrid)으로 불리기도 했다. 1905년부터 1932년까지 공식 명칭은 알폰소 13세 국왕 폐하의 컵(Copa de Su Majestad El Rey Alfonso XIII)이었고, 스페인 제2공화국 시절에는 공화국 대통령의 컵(Copa del Presidente de la República)이나 스페인 컵(Copa de España)으로 불렸고,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철권통치하던 스페인국 시절에는 대장군 각하의 컵(Copa de Su Excelencia El Generalísimo) 혹은 대장군 컵(Copa del Generalísimo)으로 불렸다.[3]
아틀레틱 빌바오는 1904년에 에스파뇰 마드리드가 제 시간에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하면서 우승자로 처리되었다. 1910년과 1913년에는 두 경쟁 연맹인 스페인 축구단 조합(Unión Española de Clubs de Fútbol)과 스페인 축구 연맹(Federación Española de Fútbol)이 각자 UECF컵(Copa UECF)과 FEF컵(Copa FEF)을 개최하였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발발 당시, 스페인의 공화파 점령지의 구단은 자유 스페인 컵(Copa de la España Libre) 대회에 참가했는데, 레반테가 같은 연고지의 경쟁 구단 발렌시아를 결승전에서 1-0으로 이겼다. 비록 2007년에 스페인 하원은 스페인 왕립 축구 연맹에게 레반테의 코파 델 레이 우승 기록 인정을 촉구했으나,[4] 스페인 축구의 행정 부서는 아직도 인정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5]
1902년 대회를 인정할 지에 대한 논쟁으로 인해, 2009년에 바르셀로나가 25번째 우승을 거두기 전까지 최다 우승 구단에 대한 논란의 논쟁이 계속되었다. 바르셀로나는 30번의 대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 구단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아틀레틱 빌바오는 2번째로 많은 우승을 했는데, 출처에 따라 24번이나 25번 우승으로 기록되어 있다.
라 리가가 1929년에 출범하기 전, 이 대회는 전국 선수권 대회로 간주되어 왔다. 참가하는 선수단은 지역 리그 성적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별 리그 시행과 같은 다양한 대회 진행 방식이 사용되어 왔다. 하부 리그에 참가하는 프로 구단의 2군은 1990년 이전까지 참가가 허용되었다. 몇 년 동안, 1부, 2부 A, 2부 B 23개 구단, 그리고 3부 우승 17개 구단(우승 구단이 프로 구단의 2군일 경우 준우승 구단)이 참가할 자격이 주어져 83개 구단이 참가하는 대회가 되었다. 2019-20 시즌을 앞두고 참가 규정이 개정되면서 참가 구단 수가 125개로 늘어났는데, 5부 리그인 지역 리그의 우승 구단도 참가하게 되었다.[6][7]
하부 리그 구단들이 참가하는 모든 예선 토너먼트 단계에서 단판 승부를 치르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다수의 상위 구단은 1라운드에서 합류하며,(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 참가하는 4개 구단은 32강인 3라운드부터 참가한다) 준결승전을 제외하고 모두 안방과 원정에서 번갈아 경기를 치른다. 이는 2019-20 시즌 개정에 따른 변화로, 이전에는 상위 구단들은 32강인 4라운드부터 참가했다. 결승전에서는 중립 구장에 양 구단이 맞붙어 단판 승부를 벌인다.
우승 구단은 그 다음 시즌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와 UEFA 유로파리그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예전에 대회를 우승한 구단이 리그도 석권했을 경우 준우승 구단도 수페르코파에 참가했었으나(비록 몇몇의 경우에는 2관왕에게 자동으로 수페르코파 우승을 수여한 경우도 있었다) 2019-20 시즌을 기점으로, 전 대회 코파 델 레이 준우승 구단도 우승 구단과 마찬가지로 수페르코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트로피
대회 역사를 통틀어, 현재까지 12개의 진품 트로피가 있는데, 진품 트로피는 3번 연속 우승하거나, 통산 5번의 우승을 거둔 경우, 그리고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소유할 자격이 주어졌다. 따라서 바르셀로나가 5개의 진품 트로피를 소장하고 있고, 아틀레틱 빌바오도 3개, 레알 마드리드도 1개(1936년의 마지막 공화국 컵) 보관하고 있다. 아틀레틱은 초대 우승 구단으로서 첫 진품 트로피를 보관하고 있으며, 세비야는 1939년에 첫 대장군 트로피(Trofeo del Generalísimo) 초대 우승 구단으로 보관하고 있고,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한 이듬해인 1976년에 우승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11번째 진품 트로피를 보관하고 있다.
새 트로피는 마드리드 세공사 페데리코 알레그레가 만들었다. 새로 만들어진 은제 트로피는 질량이 15kg이며 길이가 75cm이다. 2011년 4월 21일, 레알 마드리드가 새 트로피를 받은 첫 선수단이 되었다. 우승 뒤풀이에서, 레알 마드리드 선수 세르히오 라모스가 실수로 2층 버스에서 떨어뜨렸고, 그 트로피 위로 차량이 지나가 박살이 났다. 공무원들이 시벨레스 광장에서 파편 10조각을 회수하였다. 구단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복제본을 전시하고 있다.[9][10]
‡ 1913년 라싱 이룬의 우승 포함하는데, 이는 이룬 체육단과 1915년에 통합하여 레알 우니온이 되었기 때문이다.
‡‡ 레알 마드리드의 2군. 2군 선수단은 1990-91 시즌부터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 아틀레틱 빌바오의 우승 횟수는 논쟁중이다. 1902년에 비스카야가 우승했는데, 이 선수단은 아틀레틱 빌바오와 빌바오 축구단의 선수로 구성되어 있었다. 1903년에는 두 구단이 통합하여 오늘날의 아틀레틱 빌바오가 되었다. 1902년에 획득한 트로피는 현재 아틀레틱의 박물관에 보관중이며, 자신의 수상 명단 맨 위쪽에 기록되어 있다.[11]
A. ^ 결승전에 오르는 과정에서 에스파뇰 마드리드는 다른 경기를 끝마치지 않았는데, 이는 아틀레틱 빌바오가 탄원서를 넣는 데에 이르렀다. 이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할 수 없게 되자, 마드리드 협회는 전 시즌 우승 구단 아틀레틱의 우승을 인정하였다.
B. ^산 세바스티안 사이클링 클럽(Club Ciclista de San Sebastián)의 명칭으로 출전하였다.
C. ^바스코니아 산 세바스티안(Vasconia de San Sebastián)의 명칭으로 출전하였다.
D. ^ 흔치 않게 결승전 단판 승부가 아닌 세 구단이 한 조로서 경기를 치렀는데, 아틀레틱 빌바오가 바스코니아와의 경기에서 이기기 하루 전에 마드리드 축구단을 2-0으로 이겼고, 그에 따라 바스크 구단들 간의 경기가 우승 구단을 결정하였다. (바스코니아는 이튿날에 마드리드 축구단을 상대해 2-0으로 이기고 조경기를 모두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