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카시(우크라이나어: Черкаси, 러시아어: Черкасcы)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위치한 도시로, 체르카시주의 주도이며 면적은 69km2, 높이는 110m, 인구는 286,037명(2011년 기준), 인구밀도는 4,170명/km2이다. 드네프르강 우안과 접하며 키예프(우크라이나의 수도)에서 남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3세기 말(1284년 또는 1286년)에 건설되었다. 최초로 기록된 참고문헌은 13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 키예프 루시가 타타르족으로부터 해방된 후, 우크라이나 북부와 중부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일부가 되었고, 도시는 체르카시 스타로스티의 중심지가 되었다. 체르카시 성은 Vinnytsia, Bratslav 및 Kanev 성과 함께 크리미안-타타르 공격자들이 들어오는 길목에서 키예프 땅의 남쪽 국경에 일종의 방어선을 형성했다.
우크라이나 코자크의 첫 번째 지도자인 오스타피 다쉬케비치(1472-1535)는 체르카시에 살았다.
소련-우크라이나 전쟁(1917~1921) 동안 도시는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다. 1920년 소련군은 세 번째로 엘리자베트그라드를 점령했다.
1932~1933년 홀로도모르 기간 동안 소련 당국이 체르카시와 그 지역에서 준비한 대기근으로 154,000명이 사망했다.
1941년 8월 22일부터 1943년 12월 14일까지는 나치 독일의 점령 하에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정기적으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기 시작했으며 남동부에서 온 수천 명의 난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