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마쓰카타와 진보당이 희망하던 양대 과제가 해결되면서 본래 오쿠마와의 제휴에 불만이 있던 사쓰마 벌계 각료와 진보당 측의 대립이 격화됐다. 더욱이 마쓰카타가 재정난의 해결을 위해 지조개정 반대잇키 이래 일종의 금기로 되어 있었던 ‘지조 증징’을 제안하자 진보당 내에서 내각 전복의 기운이 생겼다. 그 결과 1897년(메이지 30년) 10월 31일에 진보당은 사실상 야당이 되어 직후에 오쿠마와 진보당계의 참사관은 사임하였다. 같은 해 12월 25일에 중의원에서 내각불신임안이 상정되어 통과가 확실시되자 마쓰카타는 곧바로 중의원 해산을 단행하였다(제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그러나 선거 후 정권 운영의 방책을 전혀 찾지 못한 마쓰카타는 그 날 사표를 제출하였다. 중의원을 해산하고 그대로 내각 총사퇴한 예는 일본 제국 헌법과 일본국 헌법을 통틀어 이 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