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일에 발족한 노다 내각에서는 제179회 임시 국회에서 야마오카 겐지 국가 공안 위원장의 다단계 판매 관여 의혹, 이치카와 야스오방위대신의 실언과 부탄 국왕의 환영 궁중 만찬회를 개인적인 이유로 불참했다는 등 일부 각료들의 잇따른 자질 문제가 구설수에 오르면서 참의원에서는 각각 문책 결의가 가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동일본 대지진) 부흥 정책의 실현, 자신이 목표로 하는 소비세 인상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제180회 통상 국회 개회를 앞두고 ‘인심일신’(人心一新)과 체제 강화를 도모하는 목적으로 2012년 1월 13일에 내각 개조를 실시했다.[1]
내각 개조에 의해 처음으로 입각한 국무대신은 오가와 도시오, 다나카 나오키, 마쓰바라 진 등 3명이며, 재입각한 국무대신은 오카다 가쓰야와 히라노 히로후미 등 2명이다. 그 외에도 각료 12명은 유임되었고 내각 개조에서의 유임한 인원수로서는 역대 최다 기록이 되었다. 내각 조성 당시의 평균 연령은 58.3세가 되었고 이중 최연소는 호소노 고시(40세)가 있다.
노다 개조내각은 계속해서 국민신당과의 연립 정권을 계속 형성하였고 같은 당에서는 지미 쇼자부로가 입각했다(재임).
2월 10일 - 부흥청의 발족에 의한 부흥대신 등의 인사를 단행해 히라노 다쓰오 방재담당대신이 부흥대신으로 임명했고, 나카가와 마사하루 전 문부과학대신이 특명담당대신으로서 방재, ‘신 공공’, 저출산 대책, 남녀 공동 참가를 담당하게 되었다.
2월 14일 - 동일본 대지진 총괄 담당 대신이 신설되면서 히라노 부흥대신이 임명되었다.[2]
6월 4일 - 내각 개조를 단행하면서 노다 내각 제2차 개조내각을 발족해 오가와 도시오 법무대신, 가노 미치히코 농림수산대신, 마에다 다케시 국토교통대신, 다나카 나오키 방위대신, 지미 쇼자부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등 5명의 국무대신을 교체했다.
부대신·대신 정무관·총리대신 보좌관
1월 16일 - 마쓰바라 진이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에 따르는 국토교통 부대신의 후임에 요시다 오사무로 기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임되었다.
2월 10일 -
부흥청의 발족에 따라 부흥대신 등의 인사를 단행해 마쓰시타 다다히로 경제산업 부대신 및 스에마쓰 요시노리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을 부흥 부대신 겸 내각부 부대신으로 임명되었다. 야나기사와 미쓰요시 경제산업대신 정무관을 경제산업 부대신에, 후임으로는 나카네 야스히로를 경제산업대신 정무관으로 임명되었다.
스에마쓰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의 후임으로는 데라타 마나부를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으로 임명해 행정개혁 및 사회 보장·세금 일체개혁 등의 담당으로 기용되었다.
고리 가즈코 내각부대신 정무관, 요시다 이즈미 재무대신 정무관, 쓰가와 쇼고 국토교통대신 정무관을 부흥대신 정무관을 겸해서 임명했고 고리 정무관은 미야기 부흥국 담당, 요시다 정무관은 후쿠시마 부흥국 및 이바라키 사무소 담당, 쓰가와 정무관은 이와테 부흥국 및 아오모리 사무소 담당으로 발령되었다.
나카쓰카 잇코 내각부 부대신 및 오구시 히로시 내각부대신 정무관에게는 부흥 부대신 또는 부흥대신 정무관을 겸해서 임명되었다.
3월 30일 - 기카와다 도루 총무 부대신, 모리 유코 문부과학 부대신, 마키 요시오 후생노동 부대신, 슈하마 료 총무대신 정무관 등 4명이 소비세 인상 관련 법안을 내각 회의에서 결정한 것에 반발하여 사표를 제출했다.
4월 4일 - 기카와다 도루 총무 부대신, 모리 유코 문부과학 부대신, 마키 요시오 후생노동 부대신, 슈하마 료 총무대신 정무관 등 4명이 낸 사표가 수리되었다.
4월 23일 - 나카가와 마사하루 특명담당대신이 저출산 대책 담당직에서 해임돼 고미야마 요코 후생노동대신을 저출산 대책 담당 대신으로 임명했다(후생노동대신과의 겸임).
내각의 움직임
2012년
1월
1월 13일 - 이 날 내각회의에서는 노다 내각 각료의 사표를 모아서 취합한 후 내각 개조 인사에 착수했으며 내각관방장관에 의한 각료 명부를 발표한 뒤 궁중에서는 국무대신으로 새롭게 임명된 5명의 인증관 인증식을 거행했고 노다 개조내각이 정식으로 발족되었다.[3] 인증식이 끝난 뒤 수상 관저에서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기자 회견을 실시하였다.[4]
1월 16일 - 노다 개조내각의 부대신, 대신 정무관의 인사를 단행했는데 마쓰바라 진이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한 것에 따르는 국토교통 부대신의 후임으로 요시다 오사무로 기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임되었다.[5]
3월 29일 - 2012년도 잠정예산에 대한 내각 회의에서 결정을 내렸고[23] 황실 제도에 관한 전문가 공청회(제2회)가 열리면서 오이시 마코토교토 대학 대학원 교수, 야마우치 마사유키도쿄 대학 대학원 교수가 의견 발표를 했다.
3월 30일 - 2012년도 잠정예산이 중의원 본회의와 참의원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같은 날 안전보장회의가 소집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한 ‘인공위성’이라고 부르는 미사일 발사 강행에 관한 대응에 대해 논의를 하였다.[24]
4월
4월 4일 - 기카와다 도루 총무 부대신, 모리 유코 문부과학 부대신, 마키 요시오 후생노동 부대신, 슈하마 료 총무대신 정무관 등 4명이 낸 사표가 수리되었다.[25]
4월 5일 - 2012년도 예산이 참의원 본회의에서 부결되어 양원협의회가 개최되었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았고 헌법의 중의원 의결의 우월 규정에 근거해서 성립했다.
4월 6일 - 기카와다 도루 총무 부대신의 후임에 오시마 아쓰시 중의원 의원, 모리 유코 문부과학 부대신의 후임에 다카이 미호 중의원 의원, 마키 요시오 후생노동 부대신의 후임에 니시무라 지나미 중의원 의원, 슈하마 료 총무대신 정무관의 후임에 가가야 겐 참의원 의원을 임명했다.[26]
4월 7일 - 노다 총리가 효고현니시노미야시에서 개최된 ‘내일의 안심’ 대화 집회에 참석했다.[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