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대왕실록》(仁祖大王實錄) 또는 《인조실록》(仁祖實錄)은 1623년 음력 3월부터 1649년 음력 5월까지 조선인조 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실록이다. 총 50권 50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를 이룬다.
개요
1623년(인조 원년) 음력 3월부터 1649년(인조 26년) 음력 5월까지 총 26년 2개월에 걸친 인조 시대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총 50권 50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를 이룬다. 정식 명칭은 《인조대왕실록》이다.
1650년(효종 1년) 음력 4월 효종이 당시 청나라 사신의 계속된 방문으로 미뤄졌던 《인조실록》의 편찬을 명하고 대제학을 차출하도록 하였고,[1] 이 해 음력 8월 1일에 정식으로 편찬 작업을 시작하였다.[2] 3년 뒤인 1653년(효종 4년) 음력 6월 26일 춘추관에서 실록 편찬 완료를 보고하였으며, 실록 편찬에 쓰인 시정기는 세초하지 않고 춘추관에 은밀히 보관하였다.[3] 이어 음력 7월 1일 총재관 김육과 대제학 채유후 등이 《인조대왕실록》 50권을 바쳤다.[4]
1929년부터 1932년에 걸쳐 경성제국대학에서 사진판으로 영인한 영인본을 발간하였다.[5]
특징 및 평가
보통 다른 실록은 왕이 즉위한 해를 즉위년으로 두고 그 이듬해를 원년으로 칭하는 유년칭원법을 사용하나, 《인조실록》은 광해군이 폐위되었기 때문에 인조가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칭하는 즉위년칭원법을 사용한다.[5]
《인조실록》의 편찬을 위해 별도의 나무 활자를 제작하였는데, 이를 "인조실록자"라 한다. 크기는 1.5x1.7cm로 《선조실록》에 쓰인 활자보다 약간 크며, 자체는 경오자[주 1]체의 형태이다. 당시 궐자와 보자의 활자를 새로 제작하기 위해 각 도에서 황양목을 채취하고, 활자를 새기기 위한 각자장[주 2]들도 징용하였다. 1657년(효종 8년) 편찬된 《선조수정실록》도 이와 같은 계통의 활자를 사용하였다.[6] 한편 "인조실록자"를 이용해 찍어낸 책을 가리켜 "인조실록자본"이라고 칭한다.[7]
《인조실록》이 완성된 1653년 실록 편찬의 전말을 기록한 의궤인 《인조대왕실록찬수청의궤》 1책이 간행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보관되어 있다.[8]
《인조실록》은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으로 격동기였던 인조 시대의 사실과 조선 후기의 역사 및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