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함(李之菡, 1517년 ~ 1578년)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한산이며, 호는 토정(土亭)·수산(水山)이다. 출생지는 보령이다. 사헌부 감찰, 우봉현령을 지낸 이치의 아들이며, 친형 성암 이지번의 문인이고 이산해의 작은아버지이다. 이덕형은 그의 조카사위이다. '토정'이라는 호는 그가 마포 나루에 자기가 사는 집을 흙으로 쌓고 그 위를 평평하게 해서 정자를 지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1][2]
이지함은 맏형인 이지번과[2][3] 개성의 서경덕으로부터도 글을 배웠다고 한다.[4] 선조 때 뛰어난 행실로 벼슬에 올라 포천 현감을 거쳐 아산 현감을 지냈다. 그 성품은 기위(奇偉)하고 효성과 우애가 돈독했다고 한다.[5] 재물에 욕심이 없어 평생 가난한 생활을 하였고, 항상 베옷과 짚신을 신었다.[6] 의약·복서·천문·지리·음양 등에 통달했으며[7] 괴상한 행동과 예언 등의 일화[2][8]가 많다. 이이와 친하여 성리학을 배우라는 권고를 받았으나 욕심이 많아 배울 수 없다고 거절했다.[3][2]
1713년(숙종 39)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9], 1718년(숙종 44) 문강(文康)이라는 시호를 받았다.[11]
1992년 《이지함선생묘》가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320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