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으로 1880년에 원산항이 개항하게 됨에 따라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1883년 한반도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인 원산학사가 설립되었다. 이후 원산항을 중심으로 한 항구 도시로 발전하였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는 경원선이 개통되어 교통·운수 기능이 더욱 강화되었다.
1945년 해방 당시 원산은 무역도시로서 이름이 높았으며, 현재는 군항(軍港)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원산항은 국제무역항으로서 1만 톤급 선박 3척이 동시에 접안 가능하고, 1일 하역능력은 2만 톤에 달한다. 일본니가타시를 오가는 만경봉호도 원산항에서 출항하였다.
현재의 원산시는 1945년 광복 당시의 원산시를 중심으로 문천군 덕원면과 안변군 서곡면 북부를 합친 지역이다.
지리
원산은 동해에 접해 있는 항구 도시로, 원산항이 위치해 있다. 직선 거리로 서울에서 북동쪽으로 180 km(경원선 223 km), 평양에서 동쪽으로 150 km(도로 190 km), 속초시에서 북서쪽으로 145 km(동해북부선 190 km) 떨어져 있다.
원산항은 영흥만 바깥에 있는 갈마반도(葛麻半島) 및 호도반도(虎島半島)와 신도(薪島), 대도(大島), 여도(麗島) 등 20여 개의 섬이 자연적인 방파제를 이루어 동해의 거친 파도를 막아 주는 천연의 양항(良港)이다.
원산 근처에는 송도원 해수욕장(松濤園 海水浴場)과 명사십리(鳴沙十里)가 있어서 광복 전에는 휴양 명소로도 유명했다.
조선시대에는 원산진(元山津)이라고 하는 어촌(漁村)에 불과했는데, 1876년에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으면서 1880년에 개항장으로 지정되었다.
1913년 조선총독부는 원산을 부(府)로 지정했으며,[1] 1914년 8월 16일 경성(京城: 서울)과의 사이에 경원선(京元線)이 완전 개통되었다.
1914년 원산부의 영역을 개항장 일대로 축소시키고, 원산부의 교외 지역 및 안변군의 영풍면을 통합하여 덕원군을 신설하였다. 1942년 덕원군 적전면, 현면을 원산부에 편입하고, 덕원군의 잔여 지역(부내면, 북성면, 풍하면, 풍상면)을 문천군에 편입하여 덕원군은 폐지되었다.
1945년 광복 당시 원산부는 함경남도에 속해 있었는데, 1946년 9월 5일 안변군, 문천군과 함께 강원도에 편입시키고 철원읍에 있던 강원도의 도 인민위원회를 원산시로 이전하였다.[2]